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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Feb 21. 2024

나는 항상, '구끼' 라고 말한다(2)

나는 종이를 접어 종이배를 만들었다. 내 오른손에 종이배를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 손바닥에 종이배가 떠 있다.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을 찾아볼 수 없는 화창한 날씨다. 그러나 하늘에 구멍이 뚫려 비가 쏟아져 지상의 모든 것들을 쓸어가 버리는 일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나는 재앙을 대비하여 배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 있다. 나의 눈앞에 종이가 있을 때 나는 항상 종이를 접어 종이배를 만들었다. 종이배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은 어머니의 성경이다. 꽤 두꺼운 책이라서 많은 종이배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면, 어머니의 성경을 한 장씩 찢어서 종이배를 만들었다. 찢어지는 소리도 듣기에 좋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이 갑자기 나타나 사정없이 나의 등짝을 후려치지만, 나는 가족을 구출할 배 만들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는 새로운 성경을 구입했다. 나는 호시탐탐 어머니의 빳빳한 종이를 노리고 있다. 하늘에 다시 구멍이 뚫려 비가 사십일 동안 쏟아지면, 모든 것은 어떻게 될까?

 세면대에 물이 가득 찼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종이배를 얼른 꺼내 띄워보았다. 종이배는 물의 흐름에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항해하는 나를 떠올렸다. 세면대 위로 물이 넘치자, 배는 물의 흐름을 타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만하면 성공이다. 나는 박아놓은 고무뚜껑을 열어놓았다. 물은 구멍으로 빠르게 휘돌아 빨려 들어갔다. 물이 회오리치다가 구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고무 뚜껑으로 세면대의 구멍을 막고 물을 다시 받았다. 얼굴에 비누를 묻히고, 물에 담갔다가 얼굴을 거울 앞으로 내밀어 손으로 훑었다. 세면 거울이 나를 비췄다. 거품이 묻은 내 얼굴을 보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가 아이였을 때, 나를 안고는 면도를 했다. 아버지는 턱부터 목젖까지 면도기로 죽 훑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우기가 커서 수염이 나면 이렇게 면도를 해야 해. 나중에, 이 아빠가 잘 가르쳐줄게.” 

 아버지는 평범한 아이들과 달리, 내가 특수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더는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다시는 아버지의 면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면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어깨에 앉을 수 없을 만큼 커버렸기 때문일까. 

 나는 얼굴을 세면대의 거울에 닿을 듯 가까이 갖다 대었다. 입김이 거울에 닿아 거울이 뿌옇다. 나는 거울을 손으로 훑고, 입을 크게 벌렸다. 거울에 비친 나의 입도 크게 벌렸다. 나는 혀를 잔뜩 말아놓고 ‘아버지’라는 말을 밀어내었다.

 “구끼.”

 누가 내 입에 ‘구끼’라는 말을 집어넣었을까?

 학교에서 선생은 나의 입을 벌리며 소리를 강요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가르치다 따라하지 못하자, 다시 자음ㆍ 모음으로 돌아갔다. 수업은 항상 그런 식이다. 새로운 단어를 가르치다 아이들이 흉내 내지 못하면 기본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어머니’ 라는 소리를 내가 뱉어낼 수 있었다면 나는 예전에 ‘아버지, 어머니’라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것이다. 언어치료사인 선생의 귀에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세요.’라는 말을 넣어주고 싶다. 내가 재미없는 수업시간에 종이배를 만들려면 학교 선생들은 내 손에서 종이를 빼앗았다. 그들이 훌륭한 교육자라면 나에게 나무와 못과 톱과 망치를 제공해야 했다. 내가 선생이라면 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고는 배의 도면을 펼쳐 배를 만드는 법을 설명해주겠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 비가 오면 학교부터 쓸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기야.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렴. 이제 놀러 가야지.”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달 장애 아동 단기 보호센터’에 가야한다. ‘발달 장애 아동 단기 보호센터’는 방과 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또 다른 학교이다. 특수학교보다는 낫다. 단기 보호센터의 교사는 나의 배 만들기를 막지 않았다. 종이접기시간에는 오히려 배도 실컷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종이접기 시간에 색종이로 빨간색 배, 파란색 배, 노란색 배를 만들었다. 근래에, 즐거운 일이 하나 생겼다. 몇 주 전에 단기 보호센터에 새로 들어온 누나가 있는데, 단기보호센터에서 그 누나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누나의 이름은 김, 선, 미, 이고 나보다 두 살이 많다. 누나는 단기보호센터에 오자마자 우리 중에 막내인 한결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밀어놓고 자신의 얼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는 한결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는 그렇게 해맑은 웃음을 본 적이 없다. 그 웃음을 보자, 물 위쪽을 둥둥 떠내려온 아이를 바구니에서 꺼내 올리는 이집트 공주가 떠올랐다. 그녀도 활짝 웃었을 것이다. 둥둥 떠내려온 아이에게 해맑은 웃음을 선사했을 것이다. 선미 누나는 나의 이집트 공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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