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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Feb 21. 2024

나는 항상, '구끼'라고 말한다(4)

단기보호센터는 빈 상자 같다. 빈 상자의 이름은 ‘파란 꿈터’이다. 나는 ‘파란 꿈터’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이 빈 상자 같은 곳에서 열 명쯤의 아이들이 과연 꿈을 꿀 수 있을까? 빈 상자는 어둡다. 내가 이름을 지었다면 ‘파란 상자’라고 했을 것이다. 파랑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하늘이 파란 색이니. 

 ‘발달 장애 아동 단기보호센터. 내가 더 크면 이 단기보호센터에도 올 수가 없겠지. 내가 컸다고 나를 쫓아내려고 하겠지. 파란 상자……’

 “선장이 왔네. 우기야 잘 지냈니?”

 은경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단기보호센터는 세 명의 정식 교사와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었다. 대개의 자원봉사자는 청솔 대학생들이다. 그들이 교대로 아이들을 돌봤다. 나는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공부방, 사랑방, 화장실, 창고, 부엌이 있고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아이들의 운동장이다. 마루에서 공놀이하는 정훈이가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자원봉사자가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다. 

 “동호 찾을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곧 찾을 겁니다.”

 동호가 또 실종된 모양이다. 그는 얌전한 아이이다. 가끔 사라지기를 좋아해서 탈이지만 말이다. 곧, 자원봉사자들에게 잡혀 끌려올 것이다. 그는 신발을 신고 절대로 도망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발에 상처가 많다. 몇 분도 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과 팔짱을 낀 채 등장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귀에 손을 올리고 ‘에, 에, 에’라는 말을 내뱉으며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 댈 것이다. 신발을 신고 도망치지 않는 동호는 이벤트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이집트 공주인 선미 누나를 찾았다. 이집트 공주는 공부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놓는 그녀의 모습이 예쁘다.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

 나는 살짝 다가가서 그림을 보았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없다. 뭉게구름이 땅 아래에서 둥둥 떠다녔다. 조그마한 집이 한가운데 있었는데, 집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지붕이 없었다. 집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에서 여자가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울타리 바깥에는 가시나무 숲이 있다. 가시나무 숲에는 뾰족한 칼이 매달려 있었다. 총 네 개였는데, 칼은 모두 붉은색들로 칠해져 있었다. 뾰족한 칼 앞에서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괴물이 있었는데,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은 사람이었다. 괴물의 키는 담벼락 높이보다 커서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그녀는 파란색 색연필로 괴물을 칠하고 있다. 그녀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회색, 노랑, 파랑, 빨간색과 그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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