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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Feb 21. 2024

나는 항상, '구끼'라고 말한다(5)

 그녀는 여러 가지 그림의 소재를 수집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섞어내는 것 같다. 말과 사람을 혼합하여 괴물을 만드는 것을 보면.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다가가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와! 피카소네.”

 찢어진 청바지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피카소네”라며 미술에 대해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림에 몰두해 있다. 

 나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는 바쁜 것 같다. 그는 중얼거리곤 했다. 

“이 사회는 썩었어, 혁명이 필요해.” 

지금 그는 혁명을 이루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자원봉사자가 나를 맡았다. 돋보기안경을 쓴 남자다. 나는 어떤 배를 만들지 구상했다. 노란 배가 좋을 것 같다. 종이배를 만들고 노란색으로 칠해야겠다. 나는 종이를 접었다. 돋보기안경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내가 만든 종이배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배 장난 그만하고. 너는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잖니. 나하고 게임 해볼래?”  

 돋보기안경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고, 카드 한 장을 뽑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빨간색 하트 아홉 개가 보였고 숫자 ‘구’ 가 박혀있다.

  “자 이것, 무슨 숫자일까?” 

  “구끼.” 

  “정말 똑똑한데, 구 맞아.” 

 그는 싱글벙글 웃었다. 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구끼’ 라는 말이 그를 즐겁게 하는 모양이다. 

“영화에서 보니까, 자폐아는 신비한 능력이 있던데. 투시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그는 다른 카드 한 장을 꺼내 손으로 가리고 물었다.

“카드에 적혀 있는 숫자가 뭘까?” 

‘내가 초능력자인가. 보이지 않는 숫자를 알아차릴 수 있게.’ 

나는 그와 게임을 하는 것을 포기해야겠다. 나는 다시 종이를 접었다. 그는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그와 마주 볼 수 있게 내 몸을 틀었다. 나와 그의 시선이 부딪쳤다. 그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이게 뭐지?”

 그는 돋보기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 나는 실험 대상이 된 것 같다. 영화가 요즘 학생들을 망쳐놓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종이를 접었다. 그는 다시 내 어깨를 붙잡고 몸을 틀었다. 아프다.

 “구끼.” 

 “이 카드. 구가 아닌데. 쳇, 투시 능력은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손바닥에 있는 카드를 내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똑바로 봐. 무슨 숫자지?”

 “구끼.”

 “에이스, 일이야, 자폐아는 숫자를 잘 모르는군.” 

 그는 뒷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심리학과 학생인 모양이다. 심리학과 학생 중 몇몇은 채집한 곤충처럼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며 무언가 노트에 끼적거리곤 했다. 나에게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이다. 온종일 실험 대상이 될 것 같다.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그녀가 그린 것처럼 땅 아래에서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 땅 아래에서 움직이는 구름이 하늘로 솟구쳐야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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