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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11

 병원에서 죽음을 생각했던 황 노인은 옛 마을에 있는 우물이 너무 뚜렷하게 떠올랐다. 우물에 빠진 아기와 그 우물 곁을 맴도는, 아기의 엄마 곁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황 노인은 CT에 찍힌 신장도 오줌이 고여 있어 우물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 몸에도 우물이 있다며 화장실에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황 노인은 수술 자국에 붙어 있는 밴드에 손을 갖다 대더니 불쑥 현수에게 말했다.

 “신장이 우물 가탐쩌.”

 “우물마씸?”

 “아니다.”

 “둥근 모양이니까마씨. 방광도 우물로 보이는데마씨. 오줌이 고여있으니 우물로 보염수광? 아버지 신장 하나 없어져도 잘 살 수 있수다.” 

 현수는 수술 부위를 만지는 황 노인을 쳐다보았다. 현수는 신장 하나가 없어서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황 노인은 혈뇨가 나왔을 때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을에 있었던 우물. 피에 섞인 우물이 불현듯 떠오르더니, 그 후 검게 보이는 그 우물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아이인 황 노인이 살던 마을에는 몇 집이 불탔고, 집을 떠나지 않거나 떠나지 못한 노인들은 대개 죽었다. 황 노인은 젖먹이, 우물에 빠뜨려 갓난아기를 죽게 한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비가 오면 그 우물이, 검은 우물이 선명하게 떠올라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아기의 울음소리와 아기 엄마의 부르짖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9박 10일의 입원을 끝으로 황 노인은 퇴원했다. 조직검사가 나왔는데 신우암 초기였다. 의사는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며 3개월 후 황 노인에게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다. 현수는 CT와 혈액, 오줌, 방광 내시경 검사를 예약했다. 병원 바깥은 봄이었지만 쌀쌀했다. 현수는 황 노인과 자신이 겪은 시련이 꽃샘추위라 믿고 싶었다. 지나가면 그만인 추위, 아버지가 말하지 못하는 4‧3이 결국 꽃샘추위로 여겨지기를 바랐다.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는 글자의 의미를 밝힌 것처럼, 몇십 년 전의 사건을 아버지가 가슴속에 묻지 않고 자신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냈으면 하는 소망을 품었다. 현수는 손녀를 보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현수는 공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배웅하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늙은 나무라면. 현수는 늙은 나무에 다시 꽃이 피듯 아버지의 몸에도 꽃이 피어나기를 바랐다. 

 황 노인은 수술을 한 후 병원에서 4‧3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숨어 있던 기억이 나타나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사건은 자신에게서 끝나야 한다고, 우물에 관한 일을 발설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땅속에 가져가야 할 아픔이라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믿었다. 공항에서 황 노인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봄이 온 것 같았다. 황 노인은 얼굴에 훅 밀려오는 봄바람을 느꼈다. 아직은 더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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