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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7

우물 앞에서 그녀는 아기를 안았던 두 손을 내려뜨렸다. 그녀의 딸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마의 젖을 깨물기 좋아했던 아기의 두 눈에 물이 들어갔다. 딸을 우물에 빠뜨린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아기를 에워싼 물이 아기의 두 눈과 코와 입으로 스며들었다. 아기는 울었고 순식간에 우물이 아기를 집어삼켰다. 아기는 물을 먹기 싫었으나 물을 먹어야 했다. 물을 내뱉으면 더 많이 입으로 들어왔다. 허둥대었으나 엄마의 자궁이 아니어서 헤엄을 칠 수 없었다. 우물에는 탯줄 또한 없었다. 우물 바깥에서 물에 잠긴 아기를 끌어당기는 방법은 없었다. 아기는 두레박이 아니었다. 아기가 우물 바닥으로 내려갔다. 다리로 우물 바닥을 밀었으나 여전히 우물 안이었다. 물속에서 딸은 마지막으로 희미하게 본 엄마의 얼굴과 젖을 떠올렸다. 우물 바깥에서 자신을 봤던 엄마의 얼굴은 자기를 안고 젖을 먹였던 얼굴도 아니었고, 자기를 안고 활짝 웃었던 얼굴 또한 아니었다. 우물이 아기 엄마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했다. 아기는 엄마의 얼굴이 지닌 의미를 읽으려고 했으나 물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와 숨을 쉴 수 없었고 자꾸 눈을 감아야 했다.

 아기가 물 안으로 잠기자 그녀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물이 다시 잔잔한 물살을 일으켰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곡을 하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손으로 우물의 울타리를 내리쳤고 돌 모서리에 손이 긁혀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눈물로 젖은 눈으로 보는 우물은 흐릿했다. 우물에 그녀의 피가 몇 방울 떨어졌다. 

 육지에서 온 경찰이 제주도 사람을 빨갱이로 여기고 총으로 쏜다는 소문이 돌았다. 무장 경찰이 쏜 총성이 황 노인이 아이였을 때 살았던 마을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군화 소리가 이 마을에서 나면 이 마을도 끝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다. 다른 마을에서는 서북청년단이 죽창을 들고 임신한 여자의 배를 찔렀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마을 사람 몇몇은 갓난아기 때문에 도망가도 다 잡혀 죽을 거라고 말했고 몇몇은 침묵으로 동조했다. 마을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자며 동굴에 항아리와 지슬과 고구마 따위를 넣기 시작했는데 미리 동굴로 간 몇 사람은 소리에 민감해졌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무장 경찰에게 발각되는 기척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기 엄마는 동굴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 엄마가 마을에 남으면 군인들이 그녀를 강간하고 집을 불태울 거라고 그녀의 남편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아기는 또 생기는 거라며 아기를 동굴에 데려갈 수는 없다고 집에 놓고 가야 할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딸 때문에 우리가 죽을 수는 없다, 마을 사람들도 죽게 할 수도 없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잠을 자지 못한 그녀는 급기야 아기를 우물 앞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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