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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5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때문에 황 노인은 제주도 K 병원을 찾아가서 CT를 찍었다. 의사가 전화로 서울에 있는 현수에게 CT에서 암으로 보이는 악성종양이 보이는데 신장암인 것 같다고 했다. 현수는 제주도에 있는 또 다른 병원, G 병원에도 찾아가서 의사 소견을 한 번 더 들어보라고 황 노인에게 말했다. 의사 소견은 같았다. 황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현수는 요즘 의료가 많이 좋아져서 암에 걸려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황 노인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했다. 현수는 황 노인에게 서울로 올라와 치료하자고 했다. 

 현수는 신장암을 잘 고친다는 명의를 찾았다. 암과 싸우는 친구들이라는 카페에 가입했는데, 카페에서 신장암 수술을 했던 환자들이 J를 수술을 잘하는 명의로 손꼽았다. J는 암환자에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친절한 의사라는, 환우의 말이 현수에게는 인상 깊었다. 현수는 J가 쓴 ‘신장암 제대로 알고 치료하기’는 책도 구매해서 읽었다. J가 근무하는 병원에 연락해 진료 예약을 잡았다. 

 황 노인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현수는 황 노인을 차에 태웠다. 그들은 S 병원으로 가서, 황 노인이 갖고 온 진료소견서와 CT 사진이 저장된 CD를 접수처에 제출한 후, J 교수를 만났다. J는 CT를 보여주면서 오줌이 모이는 부분을 신우라고 하는데 그 신우에 종양이 보인다고, 신우암 초기로 1기 아니면 2기일 것 같다고 너무 근심하지 말라고 했다. 현수는 신장암이 아니냐고 했고, J는 신우암이라고, 신우는 신장 가운데에 있다고 했다. J는 왼쪽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현수는 선생님이 신장암에 관해서 쓴 책도 다 읽었다고 수술을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J는 자신이 쓴 책을 읽었다는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J는 환자가 나이가 많으니 로봇 수술로 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황노인은 부당하다는 말을 작게 내뱉었다. 현수가 황노인에게 로봇 수술로 하면 보험이 적용 안 되니 수술비가 많이 나온다고, 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많이 권한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장암에 대해 두 권의 책을 읽은 현수는 신장 한쪽 전부를 제거하니 복강경 수술로 해도 로봇 수술과 차이가 별로 없지 않으냐고 J에게 물었다. J는 그 말이 맞다고 했다. J는 복강경 수술로 황노인의 신장 하나와 요관, 방광 일부분을 적출했다.     

 제정신을 찾은 황 노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황 노인이 현수에게 말한 첫마디는 자기를 죽이려 여기에 들여보냈냐는 것이었다. 황 노인이 현수에게 건넨 그 말을 전하자 황 노인은 미안하다고 했다. 현수는 아버지를 살리려고 이 병원까지 온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 현수는 침묵했다. 황 노인이 병실에서 지낸 첫날, 현수는 날을 샜고 틈이 날 때 휴대전화로 섬망을 검색해 봤다. 수술한 어떤 나이 많은 환자가 섬망 증상 때문에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보호자에게 침을 뱉었다는 글에 눈이 갔다. 현수는 그 글을 읽고 나서야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 노인은 빨리 회복하고 싶어 했다. 간호사의 조언대로 하루를 규칙적으로 꾸려 나갔다. 매일 병실 복도의 끝과 끝을 30번 이상 왕복했고, 폐가 쪼그라들지 않도록 숨을 들이마셔 인스피로메타 안에 있는 공 세 개를 허공에 띄우는 일을 자주 했다. 슬리퍼를 신고 복도를 너무 많이 걸어 황 노인의 발에서 피가 나왔다. 욱신거렸지만 발에 밴드를 붙인 후, 신발을 신고 또 걸어 다녔다.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가 3층에 산책하기 좋은 데가 있다고 해서 황노인은 3층으로 갔다. 현수는 오줌 줄과 링거 줄이 걸려 있는 링거 거치대를 옆에서 잡고 동행했다. 많은 환자가 가운데가 비어 있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 바닥을 걷고 있었다. 황 노인은 다섯 바퀴를 돌겠다고 했다. 창문에 비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유리창으로 비가 오는 모습을 보며 황 노인은 아들과 나란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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