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4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걸 예상하고 자신의 삶을 편지에 정리해 놓으려 한 것 같았다. 그런데 편지에 적힌 내용 중에 ‘1948년 4.3⋯ 여수 14연대 不當 不履行’이라는 글자가 현수의 눈에 띄었다. 줄임표로 표시된 것과 한자로 된 부당 불이행, 즉 부당하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수는 궁금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으나 수술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아버지에게 현수는 생략된 내용과 한자에 관해 묻지는 않았다. 편지의 마지막 장에는 두 의사의 동일한 소견, 암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던 내용이 있었다.

 현수와 현수 어머니는 자신들의 이름을 황 노인에게 말해주며 자신들이 누군지 계속 물어봤다. 황 노인은 죽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현수 어머니는 네 아버지 곁에 저승사자가 온 것 같다며 네 아버지를 데려가려 하는 것 같다고 현수에게 말했다. 황 노인은 갑자기 집이 불타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현수 어머니는 현수에게 네 아버지가 계속 헛소리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떻게 하냐고 그녀는 노심초사했다. 현수는 간호사를 다시 불렀다. 간호사는 다시 그들 곁으로 왔다. 간호사는 엄지와 검지로 황 노인의 눈을 짚고 크게 뜨게 했다. 자신이 누군지 알겠냐고 물으니 황 노인은 간호사의 상의에 달린 명찰을 잡고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간호사의 이름을 또박또박 읽었다. 그 행위는 혼미한 정신에서 벗어나는 청신호였다. 황 노인은 더는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지 않았다. 현수는 황 노인에게 자신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황 노인은 현수라고, 황, 현, 수라고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했다. 현수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아냐고 황 노인에게 말했을 때, 그는 황현수 엄마가 자신의 아내라고 대답했다.

이전 03화 검은 우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