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3

 현수는 전화기로 담당 간호사에게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말했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서 황 노인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황 노인에게 물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겠냐고 말했을 때 황 노인은 아프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진통제 많이 맞고 왔다고, 아프지 않을 거라고 간호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황 노인은 수술이 잘 안되어 아프다는 말을 내뱉었다. 간호사는 수술 잘 안되었으면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있다는 건 수술 잘 된 거라고, 황 노인을 안심시킨 후 다시 병실에서 나갔다. 현수는 병원 복도에서 담당 간호사에게 진통제가 들어가는데 왜 아버지가 계속 아프다는 소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담당 간호사는 수술 후에 이런 일이 종종 있지만, 주치의한테 전화를 걸어 다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해보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주치의에게 전화했고 현수는 통화내용이 궁금했다. 섬망이라고, 좀 더 기다려보자는, 주치의의 말을 간호사가 현수에게 전했고 현수는 섬망이 뭐냐고 다시 질문했다. 간호사는 전신마취된 후 깨어났을 때 나이가 많으신 분들에게 환각 증상이 심한 예도 있다며, 그것을 섬망으로 부른다고 답변했다. 한두 시간 기다리면 증상이 없어질 거라며, 만약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주치의가 자신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병원에 기록된 황 노인의 나이는 77세였다. 황 노인이 아이였을 때 많이 아파서 태어난 지 2년 지나고 출생신고를 했기에 그의 실제 나이는 79세,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황 노인은 수술하기 전, 편지지 아홉 장에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적어서 현수에게 건넸다. 그 편지는 일종의 유서였고, 현수는 그 편지를 읽었다. 황 노인의 아버지는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이 빗물에 쓸려가서 죽자 재혼하여 육 남매를 낳았고, 육 남매 중 다섯째가 황 노인이라는 내용으로 편지가 시작됐다. 막내는 세 살 때 폐렴으로 죽었다고 쓰여 있었다. 현수는 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그의 삶을 그려봤다. 모여 앉은 식구들 앞에 고구마가 가득 든 양푼이 있었는데 고구마가 금방 없어져 간신히 한두 개만 먹어 배가 안 불렀다는 아버지. 시골에 살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 송아지를 2만 3천 원에 사서 기뻤다던 아버지. 키운 송아지를 6만 8천 원에 팔아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 자금을 마련했다는 아버지.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자식 하나만 낳았던 아버지. 돈을 벌기 위해 밀항을 한 후, 일본에서 5년 동안 육체노동을 했던 아버지. 육체가 자산이라며 거의 매일 팔굽혀펴기 50개를 했던 아버지. 

이전 02화 검은 우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