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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Aug 11. 2023

검은 우물

10

 비가 왔다. 비는 며칠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굵은 빗줄기로 바뀌면서 빗줄기는 직선을 그으며 우물에 내리꽂혔다. 우물에 있는 물은 넘쳐서 길을 따라 흘러갔고 길에 있는 돌멩이들이 휩쓸려 떠내려갔다. 갓난아기를 우물에 넣은 그녀는 우물에서 나온 물의 흐름을 쫓았다. 그녀의 남편은 소를 끌고 지대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소를 나무에 묶고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봤다. 그녀를 만류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의 두 눈, 퀭한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아내에게 괴기스러운 힘이 생겨 아내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소의 근심스러운 눈이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줄기가 우물 옆에 있는 나무를 감아 천천히 휘돌아 나갔다. 우물에서 나오는 물은 흙과 섞여 물속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발을 잠기게 한 물이 간혹 그녀의 무릎을 때리고 지나갔다. 개천에서 흐르던 물도 원래 가던 길에서 벗어나 개천으로 들어온 작은 물줄기와 합류해 커다란 물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던 다리 위로 물줄기가 뻗어 나왔다. 물이 계속 모이자 물살이 빨라졌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거침없이 밀어냈다. 홍수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나아갔고 물에 둥둥 떠 있는 물건이 늘어났다. 갓난아기의 엄마였던 그녀는 물살을 헤치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혀 땅을 파헤치는 듯, 물속에 손을 넣고 허우적거렸다. 옷이 젖어 축축했으나 그녀는 뜨거웠다. 열기로 가득찬 그녀는 딸의 형상을 찾으려 했고, 물은 그녀의 무릎을 휘감았다.

 비가 싹 걷혔다. 어둠으로 덮인 사위도 물러가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몰려들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 물을 증발시켰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을 찾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마당에 있는 큰 돌부리에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허공에 뜬구름을 바라봤다. 축축한 공기가 그의 가슴팍으로 계속 밀려 들어왔다. 그는 우물에 빠져 죽은 딸이 엄마를 불러내기 위해 비를 쏟아지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이 고인 흙탕물에서 그의 아내를 발견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 바다 쪽으로 흘러가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아서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이 그의 귓가에서 감돌았다. 아내는 거적때기에 돌돌 말려서 그에게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몇 개의 손톱이 부러져 있었다. 그는 마을을 진작 떠나야 했다며 아내의 두 눈을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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