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루틴
일요일 아침에는 혼자 스타벅스에 온다. 평일의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스타벅스에 오는 루틴을 좋아한다. 토요일 밤에 늦게 잠들지만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전에 스타벅스 도착을 목표한다. 어제는 두 시까지 맥주를 마시고 산문집을 읽다가 세 시가 다 되어서 잤다. 프렌치 프라이즈에 생맥주를 기분 좋게 마셨고 시인의 산문을 읽으며 마음이 꽉 찼다. 좋은 기분으로 푹 자서 그런지 여덟 시에 눈을 떴다.
평일의 스타벅스는 자리가 없다. 스타벅스 따위를 가면서 전전긍긍하기는 싫다. 평일에 가는 카페는 따로 있다. 나는 넓고 사람이 없는 카페를 좋아한다. 일요일에는 매장을 확인하고 주문할 필요가 없다. 커다란 스타벅스가 텅텅 비어 있다. 집에서 나오면서 사이렌 오더를 하는 편이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스타벅스>라는 글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걷다가 사이렌 오더를 잊었다. 잊었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은 많고 스타벅스는 넓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 반이면 매장이 내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은 늘 앉는 직사각형 테이블에 노트북이 두 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8인석이지만 촘촘한 자리여서 바로 옆에 앉기는 불편했다. 두 대는 벽을 뒤로하고 가장자리에 한 대씩 있었다. 벽을 등지는 자리가 좋은데, 오늘은 나도 노트북이란 말이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멀찍이 앉아 있다. 어느 옆에 앉기에도 그러니 결국 마주 보고 앉았다. 노트북 할 때는 뒤에 사람이 없는 쪽이 좋다. 아무도 안 보지만 신경 쓰인다. 신경 쓰이는 기분이 창작의 자유를 방해한다. 이 글은 창작의 자유를 어느 정도 침해당하며 쓰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면 기분이 안 좋다. 지난주에는 기억이 안 나는데 스타벅스에 오지 않았으니 늦잠을 잤던 것 같다. 늘 와서 책을 읽었다. 오늘은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다.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기분 좋게 쓰고 있는데 네 번째 노트북이 테이블을 찾아왔다. 나는 맞은편 여자와 가까운 자리에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다. 내 쪽에는 나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왔다. 신입은 나와 한 자리를 사이에 두고 남자 앞에 앉으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노트북은 내 바로 옆에 밀착해 앉았다. 피시방처럼 칸막이도 없는데 누구와도 붙어 있기 싫었다.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신입이 부산스럽게 자신의 오피스를 구축하는 동안 흥이 깨졌다. 이 글을 들키면 안 되는데 자꾸만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신입이 주문하러 간 사이 자리를 옮기려 가방을 챙겼다. 신입 맞은편 남자도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여자도 집중이 깨졌는지 이리저리 움직였다.
네 번째 노트북 주인의 잘못은 없다. 자유가 허물어지는 게 싫어 자리를 원형 테이블로 옮겼다. 아직 자리가 많아 혼자 이인용 테이블을 차지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앉을 때 여자 앞에 앉을 걸 그랬다. 그랬다면 신입과 붙어 앉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내가 좋아하는 직사각형 테이블을 계속 임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면 소설을 읽을 생각이다. 세 권을 챙겨왔다. 두 시간 머무르는 동안 한 책을 읽다가 쉬는 시간이 필요하면 다른 책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가사 없는 음악을 들으며 쓸데없는 글을 쓰는 시간, 나는 행복하다. 이제 노트북을 접고 소설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