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저는 봄이에요. 매년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요. 가만히 있으면 오는데 왜 그리 간절히 기다리셨나요. 막상 왔더니 마중 나오지도 않으셨네요. 아직도 겨울에 묶여 계신가요? 겨울이 욕심이 많아요. 자꾸 혼자만 길어지려 해요. 함께 완성하는 계주에서 바통을 넘겨주지 않으니 제가 와도 모르죠. 봄이 왔다고 온 세상이 알 즈음이면 이미 여름이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여름이에요. 전 너무 억울해요. 제가 덥고 습해서 힘들게 한다는 거 인정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예 실격 처리하시면 어떡하나요? 에어컨이 그렇게 좋으세요? 더운 게 싫다면서… 가짜 바람은 지구를 더욱 덥게 만든다고요. 제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 년 내내 푸르른 나무 한번 눈에 담지 못하고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꽃처럼 예쁘다고 다가 아니라고요.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태양의 축복이 없다면 밥을 먹을 수 없어요. 여름은 크게 성장하는 계절이에요. 사실 내가 다 해놓은 거 가을이 마무리만 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뛴 덕분에 가을이 아낌없이 낭만을 나누어줄 수 있어요.
가을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자마자 가야 해서 늘 아쉬움이 많아요. 여름이 시킨 일들을 잘 마무리해야 하는데 겨울이 재촉해서요. 기껏해야 보름 정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름에서 벗어나자마자 겨울이 오거든요. 이번 평가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면목이 없네요.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 주세요. 선물이에요.
제가 지긋지긋하시죠? 겨울이에요. 그동안 많이 추우셨죠. 겨울이 그래요. 그래도 죽은 계절이라는 말은 듣기 싫어요. 잠깐 쉬어가는 거예요. 일 년 내내 해가 길다고 생각해 보세요. 피곤하지 않을까요.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아끼던데. 한국의 겨울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에요. 추워서 안에만 있고 싶잖아요. 가끔은 온도를 더 낮춰보았어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지 못하는 당신이 답답해서요. 온갖 불만을 감수하면서도 추운 날씨를 유지했는데요. 애꿎은 옷깃만 더 여미더라고요.
다시 봄, 제가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요.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천천히 말이에요. 당신이 알아차린 순간 저는 떠나야 할 거예요. 그러니 알아도 모른척해 주세요. 그리고 부탁이에요. 벚꽃으로만 나를 정의하지 말아 주세요. 봄날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아름답지만 그것조차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걸요. 저는 이미 여름을 향해 걷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짧아요. 부디 겨울의 옷을 빌려 입은 나를 알아봐 주세요. 두 팔 벌려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모른 채로 지나치지만 말아 주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 예쁘게 피어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이른 봄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모르는 척 같이 걸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