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커다란 커피
저기.. 혹시 무슨 커피 주문하셨어요?
낯선 여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 시켰는데 따뜻한 아메리카노 큰 거 나왔거든요. 혹시 저랑 바뀐 거 아닌가 해서요.
아, 그런데 왜 받아 오셨어요?
제가 가져다드리려고요. 점원이 바빠 보여서.
저 이미 마셨는데.
네? 남의 걸 왜 마셔요?
제 건데요?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시키셨다면서요.
제가 언제요.
아, 아니세요?
점원이 너무 바빠서 실수한 것 같아서 그냥 마시고 있었어요.
아…
주세요, 제 커피. 그쪽 커피는 제가 다시 주문해드릴게요.
괜찮아요.
잠깐만 계세요.
그는 추가로 커피를 또 사기보다 훨씬 기분 좋게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 모를 그녀를 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일 큰 사이즈를 샀다. 그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직접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얻어먹어도 될지 모르겠네요.
근데 아메리카노 마시는 사람이 흔한데 어떻게 저인 줄 아셨어요?
이렇게 큰 사이즈로 시키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근데요, 누구 기다리세요?
저요?
그쪽이요.
혼잔데요.
아까 뭐 쓰고 계시길래 편지인 줄 알았죠.
아… 그거요? 잠깐 끄적거린 거예요.
잘 안 써지셨나 봐요. 종이 구겨서 던지셨죠? 어, 저건가.
아니, 아니요. 낙서한 거예요.
보여주시면 안 돼요? 잘 쓰실 것 같아요.
못 써요.
글 쓰는 분이세요?
그건 아닌데. 좋아해요, 쓰는 거. 인스타에 혼자 쓰고 그래요. 그럼 사람들이 좋아요 눌러 줘요. 다 읽진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읽으니까. 그런 거로 만족하는 거죠.
저는 여자친구분한테 연애편지라도 쓰시는 줄 알았어요.
없어요, 여자친구.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한 삼십 분 전까진.
*
오래 기다렸지?
괜찮아. 비 와서 오느라 힘들었겠다.
오빠,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커피 뭐 마실래?
그만하자.
…
미안해. 더는 못 하겠어.
갑자기 왜 그래,
알잖아.
내가 더 시간 낼게. 미안해.
지쳤어. 혼자 있는 거 지겨워.
나 너 사랑해.
더 사랑받고 싶어. 오빤 오빠가 제일 중요하잖아.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너야.
이제 나 사랑해주는 사람 만날 거야.
…
오빠도 잘 살아. 갈게.
쓰라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방을 뒤져 종이를 찾았다. 뭐라도 쓰고 싶었다. 논문을 준비하며 출력한 자료 한 장을 뒤집어 펜을 쥐었다. 이미 가버린 그녀에게 전해주지 못할 편지를 쓰고 싶었다. 몇 글자 적으려는데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종이를 쓰레기처럼 구겨 유리창에 던졌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사이즈로 주문했다. 이걸 다 마실 때쯤 마음이 차가워지길 바랐다. 차가운 커피가 나왔다. 점원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한 모금 마셔보았다. 따뜻한 커피가 그리웠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같은 여자가 필요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눈 오는 날보다 따뜻할 텐데 오늘 날씨는 거짓말처럼 추웠다. 유리창 너머 연인들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
그럼 몇 줄만 써 봐요.
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인연인데 기념으로 써 주세요.
진심이세요?
글귀 마음에 들면 팔로우할게요.
팔로우하면 써드릴게요.
*
나는 홀로 빈 화면을 바라보다 구석에 버린 종이를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비는 그쳤고 화내고 싶을 정도로 쨍한 햇빛이 눈앞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