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서른이 마중 나왔다. 의식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이미 서른을 의식했다. 반 년이든 수개월이든 서른은 날 맞이한다. 올해의 처음을 공석으로 둔 스물아홉. 단조로운 삼 년 차. 마카롱 이미지와 다이어트 글을 동시에 보는 줏대. 나는 길목에 놓여 있었다. 성실히 준비해 온 텀블러를 내밀어 삼백 원을 벌었다.
갑갑한 열기에 급히 한 잔을 들이켰다. 얼음을 씹다 혀를 깨물었다. 냅킨을 가지러 셀프 바에 갔다. 앞에서 한 사람이 컵과 접시를 정리하고 있었다. 포크 끝 코코아 가루를 보니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었다. 느릿느릿 정리를 마친 사람이 자리를 내주었다. 냅킨이 있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점원에게 냅킨을 달라고 말할 준비를 했다. 바빠 보이는 사람을 멈춰 세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부탁이 어렵다. 냅킨을 한 손 가득 받았다. 이렇게 많이는 아니었는데.
자리로 돌아왔는데 내 잔이 없다. 다 마시긴 했지만 어차피 반납해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내 건데 어딨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자기 잔을 가지고 있었다. 휘핑크림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새것이든 쓸데없는 얼음만 가득하든 잔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필요 없이 상실감을 채웠다. 다 먹은 줄 알고 누가 대신 치워 준 걸까. 고맙긴 한데 과한 호의였다. 안 그래도 얼음을 그만 먹으려고 하기는 했지만 아직 내 몫인데. 더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해 문을 열었다. 나서는 순간 안녕히 가세요. 미련 없이 나를 배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밝은 햇빛이 나를 쪼았다. 땀이 흐르고 옷이 눅눅해졌다. 어깨가 무거웠다. 가방을 열어 휴대용 선풍기를 찾았다. 선풍기가 젖어 있었다. 뚜껑을 닫지 않은 텀블러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텀블러를 꺼내자 녹아가는 얼음조각이 쏟아졌다. 참 커피를 여기에 마셨지. 그것도 잊어버리고 미아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바람이 시원찮았다. 시원한 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달콤한 디저트도 당겼다. 아까 있던 카페에 들어가 케이크만 주문할까. 앞사람이 먹었던 그 티라미수. 커피는 마셨으니까 케이크만 먹자. 거꾸로 몸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가 방향을 바꿨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발뒤꿈치부터 닿게 걸었다. 요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일상이 숨 막혔다. 삶의 충만함은 원하지만 매인 일은 싫고, 공부도 그립지만 연구에 파묻힐 자신은 없고, 남자는 필요하지만 연애는 따분한 지금. 분명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까 머무른 곳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똑같고 사람들도 붐비는데 내가 찾는 장소가 없었다. 왔다 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없자 아까 들렸던 게 맞나 의심이 되었다. 다른 집에도 케이크가 있을 텐데 먹기 싫어졌다. 선풍기를 꺼내 얼굴 가까이 대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