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베이스에 토닉워터 넣어 레몬 한 조각
"얼굴이 제 이상형이에요, 진짜로."
바텐더가 진토닉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레몬 슬라이스가 퐁당 빠진 투명한 칵테일로 마른 입을 적셨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혼자 온 건 아니었다. 그냥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집에 있기는 싫고 카페도 지겹고 나쁜 비트에 사르르 섞였으면 했다. 예쁘게 꾸미면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옷도 대충 입었다. 흰색 긴팔 티에 진회색 슬랙스, 검은 스니커즈였다.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을 의도했지만 색색의 조명 아래에서 무채색은 존재를 발했다.
이상형이라는 말을 언제 들어봤었더라. 낯선 이의 취향에 맞는 생김새를 한 나는 과하지 않을 정도의 미소를 띠었다. 약간 독한 맛의 액체가 넘어가는 기분이 좋았다. 진짜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진짜로,라는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 그 세 글자는 진심을 담보하기는커녕 앞 문장이 가지고 있던 미약한 힘마저 빼앗아 버리니까. 이상형이면 어쩔 거고 립서비스면 또 어때. 손님인 내가 듣기에 좋으면 됐지. 드라이진에 짜 넣은 레몬 한 방울 같은 말이었다. 그의 언변은 칵테일을 뒤섞는 손동작처럼 유연했다.
"네에."
말뿐인 호의에는 가치가 없어. 만약 진심이라 해도 밤에 일하는 사람은 싫으니까 그간 쌓아 온 지식으로 두 번째 잔이나 추천하고 사라져. 진토닉은 간단명료하다. 진베이스에 토닉워터를 넣어 레몬 한 조각을 띄우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낸다. 오늘의 미각은 만족스럽다.
"다음으로는 깔루아밀크 어떠세요."
두 번째 잔을 추천한 사람은 바텐더가 아닌 다른 손님이었다.
"괜찮으시면 한 잔 사드려도 될까요."
여기가 파리라면. 마드무아젤, 제가 한 잔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자연스러웠겠지만 한국에서 낯선 이에게 술을 얻어먹기는 꺼림칙하다.
깔루아밀크는 진한 커피우유같이 단맛을 내는 칵테일로 진토닉 다음으로 즐겨 마시곤 했다. 안 그래도 그거 마시려고 했는데 사 준다네.
"네에."
"전 롱티 한잔하고 있었어요."
토닉워터를 잔뜩 부어 주어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다. 음료를 홀로 두고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이따가 가야지.
"깔루아밀크 나오면 드시고 계세요.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러세요. 왼쪽으로 틀었던 몸을 되돌렸다. 바텐더가 깔루아밀크를 만들어 내놓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오른쪽이다.
"깔루아밀크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그거 주문하려고요. 보통 여자분들이 많이 좋아하시는데 달아서 좋더라고요."
"네에."
칵테일 바란 이런 곳이구나. 자유로운 대화가 범람하는 곳. 나는 벌써 피곤해졌다. 아직 입을 대지 않은 깔루아밀크를 오른쪽 사람에게 내밀었다. 마침 왼쪽 사람이 자리로 돌아왔다.
"두 분 심심하신 거 같은데 말씀 나누세요. 저는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려고요."
진토닉과 깔루아 밀크, 롱티를 계산하고 바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