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이 책의 키워드는 자발성이다.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무기력하다는 말이다. 프롬은 자발성과 자발적 활동이 자유와 자기 존재의 특징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타인들과 순응하지 못하면 끔찍한 고독이 닥치고 집단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하리라 느낀다는 것이다. 자율을 유념해야 한다. 삶의 자발성을 무시하면 인간은 고통스러워진다. 일상은 무미건조하고 나 없는 나는 공허하다.
프롬은 소속감이나 팀워크의 이름으로 부르는 타인과의 시간을,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이라 봤다. 혼자 있지 못하는 자들이 뭉쳤을 때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 같다. 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인식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이 책에서도 만났다.
자발성을 이야기하면서 어린아이를 예로 들었다. 어린아이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자발성이다. 자발성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호소한다. 자발성만큼 매력적이며 설득력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프롬이 말하는 자발성은 이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고민 후 깨달음, 참신한 감각적 쾌락, 솟구치는 사랑 등 자발적인 체험을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95쪽에서는 이런 문학적인 표현도 발견했다.
'학자는 외과의가 환자를 대하듯 무균의 손으로 사실에 접근해야 한다.'
어떠한 논리적 결함도 허용하지 않고 엄격한 사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두고 외과의사 비유를 들었다.
사람들은 익명의 권위에 의지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순응을 강요당할 때 무력감은 더한다.
149쪽의 신경증 환자가 느끼는 무력감이 인상적이다.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나의 의지로는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공기와 같다.' 읽기만 해도 무력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프롬이 제시한 조건은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이다. 무지할수록 무기력하다. 상황을 인식하는 감각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는 감탄의 능력을 꼽는다. 어떤 것에 당황하며 감탄할 때 창조적으로 응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과정을 거치며 감탄 능력을 잃는다고 한다.
자발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두고 레코드플레이어에 비유한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만약 레코드플레이어가 생각을 할 줄 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지금 모차르트의 심포니를 연주해."
그러나 레코드판이 턴테이블에 걸리면 플레이어는 그저 녹음된 음악을 재생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것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의견을 분석해 보면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거나 신문에서 읽었거나 부모의 가르침을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독자는 무기력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들었는데 무기력한 말들로 가득하다. 마지막에서 나는 다음 문장을 보았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즉 자발적으로 살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니체와 프롬에 끌리는 이유는 그들의 키워드가 주체성과 자발성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