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잡문집

<랄랄라 하우스> - 김영하

by 아륜

소설가 김영하는 이 책을 흑역사라 생각할까, 자랑스러워할까, 아님 이런 거 끄적거렸단 사실을 잊어버렸을까?

처음에 나는 이 책이 무슨 고양이 다이어리인 줄 알았다. 랄랄라 흥얼거리는 제목도 웃기고. 하우스는 집이 아니라 김영하 마음의 집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부제를 보니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이다. 고양이 얘기로 시작했다가 별의별 말을 다 한다. 김영하 잡문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존재 자체도 몰랐다가 선물 받아서 알게 됐다. 김영하의 2005년 문장을 봤다. 2019년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글이 기가 막히게 늘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무게가 엄청났다. 김영하의 옛 문장이 지금보다 별로여서 기뻤고 가속도가 붙었을 그의 실력이 기대됐다. 그러다 역시나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깨닫는 대목을 발견했다.


1.


일반적으로 사랑의 비극성은 시간, 장소, 벡터(방향), 이 세 가지의 엇갈림으로 증폭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런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벡터) 내가 사랑을 포기하자 네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시간) 그러나 그때 이미 나에게는 다른 사랑이 있었다. 마침 내가 그 사랑을 떠나 너에게로 오자 너는 이미 외국으로 멀리 떠난 상태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만날 수가 없다.(장소)' 이런 식이다. (p. 199)


2.

조용히 개강했다 조용히 종강하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연극원은 구성원 전원이 극장에 모여 그 학기에 올릴 공연들을 소개하고 뭐 이런저런 공지사항도 전달하고 그러는 것이었다. (… ) 그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어리둥절 앉아 있는 사이 총회가 끝났는데, 놀라운 일은 바로 그때 일어났다. (… ) 부원장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벌떡 일어나 착착착, 의자를 포개며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사불란하게 장내를 정리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 )

만약 문학인들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인들은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선 생각이 많다. '이 의자를 꼭 치워야 할까?' '만약 치운다면 그것은 꼭 나여야 할까?' '만약 의자를 치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좀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난 빈 의자들이 꽤 아름다운걸? 저런 걸 혼돈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거겠지?' 조금 더 철학적인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저기 의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지? 우리의 감각을 신뢰할 수 있을까? 혹시 허상인 것은 아닐까?'

이러다 보면 누군가 와서 팔을 잡아끌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빈 의자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p. 207-208)


1번을 읽고는 과연 그런걸, 하고 과학적인 설명에 감탄했고 2번을 읽고는 한참을 웃었다. 책은 작가의 말을 결여한 채 고양이 사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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