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떨어진 시력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 그가 들어왔을 때 나는 시간의 틈을 잊었다. 첫말을 무엇으로 내뱉어야 할지 고민할 틈은 없었다.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온 열기로 일곱 해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슬쩍 패인 보조개와 속에 숨긴 쌍꺼풀, 우뚝 솟은 코, 거친 눈썹까지 그대로였다. 나와 같은 눈높이로 앞에 선 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구부려 안녕, 목소리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음을 떨어트렸다. 그의 약지에는 나와 비슷한 디자인의 반지가 걸려 있었다.
“오랜만이야.” 내가 말했다. 그가 나에게 쥐여 준 이별은 기억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손을 잡지 않았다. 두 팔을 내 등에 대고 나를 힘껏 안았다. 나는 항의를 담은 눈빛을 보여줄 수 없었다. 조금도 거리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간을 무시한 그의 무례가 마음에 들었다.
시계를 끄고 빛도 끄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싶었다.
잘 지냈어? 라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헤어질 줄 몰랐던 것처럼, 다시 만날 줄 몰랐던 두 사람이 그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사는 줄 알았더라면 우연인 척 한 번이라도 지나쳤을 거였다. 지역의 변리사를 검색하다 특허법률사무소 앞에 붙은 그의 이름을 보고 나는 거짓말 같은 전화를 했다. 특허법인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는 번호로 걸었다.
김 변리사님, 맞나요?
네, 맞습니다. 어디신가요?
그의 목소리를 확인했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칠 년보다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의뢰할 일이 있어 사무실로 가겠다고 했다.
내가 있는 바로 옆 건물이 그가 대표로 일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밖에서 보자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나 한 번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도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나란히 그의 사무실로 걸었다. 이제 우리는 각자 다른 이들에게 등록되어 있었다. 지난 시간을 보증해 줄 사람은 서로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