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를 가장한 이들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창고에 열두 달 묵혔다 꺼내 입은 산타복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하얀 수염을 얼굴에 붙일 때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산타 복장으로 선물을 전하면 택배나 배달 일과 다를 바 없는데도 내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의 임무는 후덥지근한 옷차림을 견디며 초인종을 누르고 문고리에 선물을 걸어두는 것이었다. 아파트에서는 바로 엘리베이터에 갇혀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주택가에선 아이들이 나와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 때면 꼭 주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도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하룻밤 알바를 하는 처지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쁨을 생산했다.
친구들의 고백 무대를 꾸미던 기억으로 개업한 이벤트 카페였다. 나는 이벤트를 예약하는 고객에게 또 다른 이벤트를 해주었다. 주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었다. 전역한 군인이 공간을 빌려 여자친구에게 꽃신을 전해주기로 했다. 나는 예약자를 위해 소품샵에서 구매한 미니어처 군화를 꽃으로 장식해 입구에 두었다. 내가 상병일 때 계획한 이벤트였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고 함께한 세월을 더할 때마다 손님들은 행복을 부풀리기 위해 가게를 찾아왔다. 누군가를 기쁘게 만들어 줄 사람은 잠시 후를 기대하며 즐거워했다. 그런 예약자를 놀라게 하면 그는 다음에도 나를 찾았다.
하얀 수염은 코 아래부터 목까지 전부 가려 마치 두꺼운 목도리 같았다. 고객을 만나지 않지만 혹시 아이들과 마주칠 때를 대비해 복장을 유지해야 했다. 진짜 고객인 어린이에게 사업 망한 서른일곱의 얼굴을 들켰다간 큰일이었다.
이층집에 올라가 선물 꾸러미를 두고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진짜 왔네!” 작은아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산타 아저씨.” 큰아이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는 갑작스레 산타 목소리를 연기할 자신이 없어 가짜 수염을 쓰다듬고는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이거 뻥이잖아.” 작은아이가 웃음을 빵 터뜨리며 말했다.
“야. 조용히 해. 엄마 실망해. 누나가 산타 믿는 척하라고 했어, 안 했어. 엄마 통화 들었어요. 죄송해요, 아저씨.” 큰아이가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그린 후에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일층으로 내려와 뒤를 돌아보니 두 아이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가게를 완전히 닫고 며칠 동안 누워만 있다가 움직이니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그런 통증이 무뎌지는 듯했다. 내가 차로 돌아가 앉을 때까지 아이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셨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이 눈송이처럼 다가와 안아주면 살맛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동심을 지켜주는 남매를 매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지금 꽁꽁 얼어 눈사람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커피로 몸을 녹인 후 선물 주머니를 등에 메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몇 개의 집만 더 들리면 되었다. 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걷는데 뒤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높은 구두 소리는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가 곧 나를 지나쳐 갔다. 뒷주머니에 뭔가 걸리적거려 꺼내니 빳빳한 검은 봉투에 금색 스티커가 보였다.
“저기요.” 내가 말했다.
검은 코트에 검은 부츠를 신은 여자가 돌아보았다.
“이거 그쪽 거예요?”
“아니요.” 여자가 말했다.
“제 거예요?”
“……네.”
나는 금색 스티커를 떼서 옷에 붙이고 봉투를 열어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현금이었다. 오만 원 권이 두 장이나 들었고 동전도 하나 보였다. 122,500원.
“저 주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콧등에 투둑 한 방울이 떨어졌다. 진눈깨비였다.
“아이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몇 군데만 돌면 끝나요.”
나는 여자 손에 차키를 쥐여 주고 다음 집으로 걸었다. 뒤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돌아보니 여자가 빨간 트럭 조수석에 앉아 문을 닫는 모습이 보였다. 업체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힌 데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트럭에 정장 차림의 여자가 타게 될 줄은 산타도 몰랐을 거였다.
계단을 두 개씩 올라 빠르게 일을 마치고 트럭 앞으로 돌아가 조수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등받이를 젖히고 졸던 여자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차 안은 시동이 걸려 있어 따듯했다.
“저녁 드셨어요?” 내가 물었다.
“네.”
“야식은 아직이죠?”
나는 즐겨 찾던 콩나물국밥 체인점에 갈까 하다가 아까 골목 입구에서 받은 전단의 이자카야로 차를 몰았다. 가게까지 운전하는 십 분 동안 차에는 대화나 음악이 흐르지 않고 입김마저 없었다. 나는 신호에 걸릴 때마다 모자며 수염이며 하나씩 허물을 벗었다.
밤을 늘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술집에 마주앉았다. 나는 궁금한 게 크리스마스이브의 연인 만큼 많았지만 집에 간다고 할까 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튀김과 뜨듯한 술로 테이블이 좁아진 후에 여자는 입을 열었다.
“오늘 생일이라서요.”
“생일 축하해요. 제가 살게요.”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 봉투를 꺼내 보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림 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