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성냥팔이 소녀> 각색

by 아륜

소녀의 맨발에 사박사박 눈이 맺혔다. 얼음 결정체가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아린은 방문이 무너지기 전에 일층 창문으로 뛰어나왔다. 무사히 크리스마스를 넘긴 가장은 불콰한 얼굴로 부술 듯이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두 번째 맞는 엄마의 기일이었다. 12월 31일은 아린에게 두려운 날이 되었다. 딸은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문고리를 쥐고 버티던 아린이 일층의 낡은 창문을 뜯어내고 어두운 담벼락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날의 함박눈이 쏟아졌다. 붉게 도드라진 보도블록 사이로 뿔처럼 날카로운 오물이 끼었다. 지저분하고 위험한 바닥보다는 차갑지만 깨끗한 눈길이 나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맨발의 소녀에게 짧게 시선을 주었다 뺏었다. 큰길에 들어서자 아린의 발바닥이 얼얼했다.


아린의 엄마가 동생을 낳다가 한 해와 함께 저문 지 이 년이 되는 날이었다. 갓난아이가 곧 숨을 잃고 살아남은 아린은 엄마의 남편과 둘이 지냈다. 그러게 내가 지우자고 했잖아, 멍청한 년. 아린의 아빠가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엄마는 죽어서도 주정을 들었다. 지우개 없이 스케치를 지속한 여자의 삶은 채색할 겨를 없이 구겨졌다.


아린은 길 한가운데 방치된 벤치에 올라가 앉았다. 이제 발 대신 다른 곳이 찼다. 아린은 손으로 엉덩이를 보호했다. 허연 손이 눈에 파묻혔다.


“아빠, 친구 추워.”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던 남자아이가 아린을 보며 말했다. 아이의 엄마가 아린에게 다가와 물었다.

“얘야, 엄마 어디 가셨니.”

“모르겠어요.”

“아줌마랑 같이 파출소 가자.”

“싫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가자. 엄마 만나러.”


아이의 엄마는 아린을 업었다. 아빠와 뒤따라 걷던 아이가 허공에 뜬 아린의 맨발을 잡았다.


“따뜻하지.” 아이가 말했다.

아린이 남의 엄마 등에서 훌쩍거렸다.


네 사람은 관할 파출소를 찾아 들어갔다. 경찰이 등에 업힌 소녀에게 내려오라고 말했다. 아이 가족은 경찰과 몇 마디 주고받고 각자 손을 한 번씩 내밀고는 사라졌다. 아린이 검은색 슬리퍼를 전해 받아 신었다. 손난로 한 쌍이 꽁꽁 언 발을 녹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소녀의 이름과 그 엄마 이름을 물었다. 아린의 대답을 들은 경찰이 한참이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구나. 아저씨가 코코아 타 줄게. 조금만 기다려.”

경찰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아린은 눈앞에 있는 어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만날 수 없었다. 엄마의 흔적이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은 파출소보다는 병원일 거였다. 병원에 가면 엄마가 누운 침대가 있고 임신 기간 내내 엄마를 치료한 의사도 있었다. 아린은 차라리 아프고 싶었다. 아린이 손난로를 쥐고 그대로 파출소를 나서서 달렸다. 소녀는 병원으로 가야 했다.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큰길이 나왔다. 그때 구급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스쳤다. 아린은 하얀 차를 향해 달렸다. 소녀의 달음질은 환자보다 느렸다. 도로 중앙까지 달려나간 아린이 눈을 훔치며 횡단보도로 걸었다.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아래 사람들이 적법한 횡단을 하고 있었다. 아린이 횡단보도의 끝에 다다를 무렵 검은 차 하나가 매섭게 달려왔다. 운전자는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소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린은 순간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다. 소녀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눈 녹은 거리를 물들였다. 운전대를 쥐고 있던 운전자의 혈관에서 술 섞인 피가 안전하게 흘렀다.


그제야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린을 찾아 나온 경찰이 소녀를 발견했다. 아직 새해가 오지 못한 때였다.






그림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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