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by 아륜

흐린 주말 산에 올랐다. 지난 1월부터 운동을 안 했으니 오래간만에 하는 활동이었다. 3월까지는 근처 산책이라도 했는데 집콕이 적응되고부터 자가격리자처럼 가만히 지냈다. 동네 산이라지만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시작부터 벅찼다. 나는 잠자던 허벅지 근육을 깨워 힘겹게 올라갔다. 산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머리를 다시 묶었다. 신발을 신경 써서 골랐는데 평지에서 달리기 좋은 신발이었다. 가파른 경사를 감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고 빈속으로 점심이 지나 시작한 등산이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숨이 차서 정신이 없었다. 나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저 언덕을 통과하면 정상이 있는 줄 알았다. 그 언덕을 올라가면 잠깐의 평지가 나오고 다시 언덕이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내게는 높았다. 조금 어지럽다 싶을 때 밀크카라멜 하나를 꺼내 먹었다. 정상에서 김밥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하니 빈 가방이 야속했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내자 앞에 노부부가 보였다. 할머니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일정한 속도로 산을 탔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 생각했다. 먼저 앞지르려 했으나 젊은이의 체력은 노인의 의지보다 못해 나는 그들을 뒤따랐다. 나중에는 다리의 고통이 심해지자 얼른 끝내버리고 싶어서 속도를 올렸다. 노부부를 앞질러 오르면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정상이 가까웠다. 마침내 정상의 정자가 보일 때 나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휴식을 만끽했다.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고 사진을 찍으며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땀 흘린 얼굴 사진을 보내고 다시 내려왔다. 건조해서 산불 위험이 있으니 등산을 자제하라는 안전문자를 뒤늦게 확인했다. 나는 이미 산에 있고 내려가는 중이라 문자를 삭제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중간에 길을 잃어 다른 동네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같은 구에 있지만 올 일이 없는 동네였다. 밀집해서 카페와 상점이 많은 우리 동과 달리 그곳은 넓은 빌라 타운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낮은 집들이 고요하게 앉아 있어 이국적이었다. 나중에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리 알아본 파전집까지는 조금 더 걸었다. 오후 세 시쯤 들어간 식당은 한산했다. 메뉴판을 읽으며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동안 사장님이 테이블에 딸기를 두고 갔다. 딸기가 서너 개 정도만 있어도 감탄했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열 개가 넘었다. 나는 손을 씻지 못했으므로 소독젤을 발랐다.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이 옆 테이블에 있는 물티슈를 통째로 가져다주었다. 손님용은 아닌 것 같고 홀에서 쓰는 티슈 같았다. 지난달에 집에서 쓰던 물티슈와 브랜드가 같아 친숙했다. 물티슈 두 장을 뽑아 손을 닦고 딸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빨간 외모에 걸맞은 과즙이 따라왔다. 나는 정상에 오른 정복감으로 정신적으로 행복한 상황에서 무료 에피타이저 딸기 꾸러미로 몸까지 행복해졌다. 피로가 풀리면서 입맛이 당겼다. 딸기를 먹다가 주문하는 걸 잊을 뻔했다. 저희 도토리묵사발이랑 해물파전, 그리고 비빔메밀 주세요. 막걸리는 지평으로 부탁드려요. 도토리묵사발이 먼저 나왔다. 딸기는 모두 해치운 뒤였다. 도토리묵이 헤엄치는 국물을 그릇째 마셨다. 그다음으로 나온 비빔메밀을 빨리 먹고 싶어 젓가락으로 과격하게 면을 비볐다. 젓가락이 약했는지 내가 급했는지 메밀면을 건드리자마자 티타늄과 나무 손잡이 부분이 분리되어 젓가락이 망가졌다. 나는 조용히 새 젓가락을 꺼내 메밀을 대강 비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파전이 나왔고 피자처럼 조각난 전을 막걸리 한 모금과 번갈아 먹었다. 메밀을 중간쯤 먹었을 때 사장님이 계란후라이를 내왔다. 원래 국수에 계란이 들어가야 하는데 깜빡 잊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삶은 달걀이 없었다. 하지만 후라이가 더 좋은걸. 후라이는 취향대로 반숙으로 익었고 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요리를 즐겼다. 막걸리 맛도 좋았지만 음료는 뒷전이었다. 막걸리를 남기고 나와 피로에 더한 취기를 다스리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오후의 공기가 축축했다. 씻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정상에 오르는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발가락 끝까지 상쾌했다. 머리를 말리지 않고 두꺼운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니 저녁이었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면서 휴일을 마무리했다. 여유로운 주말이면 등산 루틴을 언제까지나 반복하고 싶다. 부러진 젓가락을 보여드리자마자 아유 괜찮아요 괜찮아, 따뜻하게 미소 짓던 사장님을 또 보고 싶다. 다음에는 준비운동을 하고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다녀와야지 생각한다. 미지근한 생수 대신 보리음료를 챙기고 카라멜 대신 abc초콜릿 한 봉지를 가져가면 덜 힘들게 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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