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의미

<외로움을 맡아드립니다>

by 아륜

네가 책을 썼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 난 요새 자꾸 까먹고 짧은 메모 쓰기도 어려운데. 박사 중인 친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친구가 안겨 준 석사논문을 생각했다. 신장 어쩌고 줄기세포 저쩌고인데다 영문이라 정독하진 못했지만. 앞장에 써준 편지를 보면서 친구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실험하고 연구하며 고통받고 찬란했을 시간들, 그 속에서 한 권의 저자가 된 친구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났다.


게다가 아직 난 책을 쓰지도 않았다. 얼음이란 테마로 소설들을 쓰고 이제 묶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친구가 연락해와서 글을 인쇄해 친구 집으로 종이 꾸러미를 들고 갔을 뿐이었다. 그것은 아직 책이 아니었다. 인디자인으로 편집한 피디에프 파일의 출력물이었다. 투고 거절 메일을 받고 또 다른 거절을 기다리며 지쳐 있다가 혼자라도 만들어야겠다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이것저것 편집하던 중, 뭐하냐는 연락에 셀프로 책을 만든다고 하니 안 그래도 네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쓴다 하니까 디자인하는 친구 오빠가 나중에 책 만들면 표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 참이라고. 작년에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서 친구의 만남도 거절했다. 오랜만에 친구 집으로 갔다. 한 시간 동안 나의 소설 세계와 그걸 표현해줄 이미지를 셋이 상의했다. 아직 책이 아니지만 원고가 책을 꿈꾸는 순간이었다.


글은 연말에 원고가 되었다. 전부 뽑아 읽어봐도 나는 재밌어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등단 작가도 책을 내기 쉽지 않은데 팔리는 주제의 에세이도 아니고 출판사가 보기에는 아무나가 쓴 소설을 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해봤다. 메일을 띵 보내는 과정은 간결했지만 글을 정리하고 기획서를 첨부하기까지 나는 다 바쳤다고 할 만큼 열심을 쏟아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첫 번째 출판사에 투고하며 나의 글이 원고가 되었다. 그날 해가 저문 후 꽃집 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가 나에게 델피늄을 선물했다. 머리가 아파도 끝내주게 행복했다.


보통 소설을 쓴다고 하면 문예창작학부에 소속되어 있거나 아카데미에서 습작하며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준비한다. 일등 하나만 뽑는 대회를. 하아… 나는 그저 너무 쓰고 싶어서 쓰는 건데. 등단해서 원고 청탁을 기다려 소설을 쌓고 소설집을 내고 기대만큼 안 팔려서 생활이 어렵고 강의를 하며 쓸 시간을 빼앗기고… 그러면 좋겠지만. 대체 난 언제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일등도 힘들다는데. 내가 어떻게. 나는 책을 목표하지 않고 글을 썼다. 직장에 다닐 때도 틈틈이 뭔가를 쓰려고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해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저 단상을 기록하기에 그쳤다. 이야기 짓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프리랜서로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집중해 달에 한 편을 완성했다. 책 대신 내가 얼린 얼음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마치려고 애썼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를 지었다.


소설을 쓰는 시간은 키보드가 눌리는 때만이 아니다. 텅 빈 화면을 노려보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면서 멍을 때리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대화에 빠지는 모든 순간, 즉 나의 시간 전체가 소설을 쓰고 있다. 옛날처럼 벌지 못하는 대신 나는 시간 부자가 되어 소설들을 쌓았다. 누가 뭐라 생각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니까. 안에서부터 뭔가가 나오기를 강렬히 바라니까. 그 모양이 어떻고 가치가 어떤지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 마칠 때까지는 괴롭고 마침표를 찍고 난 후 올렸을 때 사람들이 읽고 감상을 남겨주면 기뻤다. 나는 그들을 나의 독자로 생각했다. 내 생각에 나는 이미 소설가로 사는 중이었지만 인증받은 소설가가 되지 못할 운명이라면 책 한 권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직장인으로, 그것도 의미 있는 삶이지만 창작 욕구가 있는 나에게는 시간을 뺏겨 고통스러운,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때 잘 견딜 수 있게 후회 없도록 책으로 정리하고 가자고 결심한 즉시 책상에 앉아 편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책을 만들겠다고 원고를 책의 형태에 맞게 표지와 책등, 책날개를 구성하고 소설을 프린트해 친구에게 갔다. 동생의 친구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표지 그림을 그려주는 친구 가족을 보며 미안하고 감사했다. 받은 마음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빚을 갚으려고 하기보다는 나도 내 동생에게 소중한 친구라면 베풀어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림을 수정하는 동안 충무로에 다녀왔다. 3호선을 타고. 중-고-대 생활 내내 타던 노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 반가운 마음은 잠시, 사람이 많아 답답할 즈음 한강이었다. 화창한 강물을 퍼서 눈에 담고 역에 내렸다. 중학교 때 신문반 선배들을 따라 인쇄소에 자주 오던 때가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 빠지고 들뜬 기분으로 커다란 기계와 잉크 냄새를 맡던 때. 바깥이 깜깜해지면 우르르 일식집에서 우동과 돈까스를 사 먹고 돌아왔다. 학기 내내 매일 멋진 비유를 고민해 선배에게 들고 갔다. 3학년이 되어서는 2학년 애들을 데리고 똑같은 코스로 우리끼리 소풍을 다녔다. 나는 그대로였다. 더는 열다섯이 아니지만 나는 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는 걸. 책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기는 했다. 과거의 나에게 한 권의 선물을 주고 싶은 생각이 모호한 걱정을 압도했다. 어린 네가 그때 조금이라도 끄적인 것들 어디 가지 않았다고. 아무도 모르게 축적되어서 이렇게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이게 너라고.

인쇄소 사장님과 상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책이 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이 모든 게 종이였지. 소설 세계를 상상할 때는 몰랐던 종이의 세계. 종이에도 색과 무게와 계급이 존재했다. 글이 원고가 되고 책까지 바라보면서 글을 쓸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지만 좋았다. 종이는 종이만으로 아름다웠다. 견적서를 받아보았다. 흔히 쓰는 국산 종이와 수입지 가격 차이가 조금 났다. 돈이 줄고 있고. 내가 만진 종이는 느낌이 좋았는데. 결정한 표지 종이는 키칼라(Keaykolour) 300g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렌치 감성을 가졌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색이라 한다. 자연스러운 색감과 질감. 나에게 어울리는 종이가 아닌가. 예쁜 옷을 입을 나의 글을 생각하니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이야기의 살결을 만질 독자분들은 어떤 반응일까. 이미 읽은 이야기도 책으로 보고 느끼면 다를 것이다.


내가 전부 결정하고 계획한 만큼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등단 작가나 기성출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작가는 글만 쓰기에도 바쁘고 여럿이 함께해야 완성도 높은 출판물이 나온다. 독립출판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독립적인 기운이 출판까지 미치고 말았다. 어쨌든 이렇게 되었다. 번거롭고 막연하게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스몰 웨딩 같다고 생각했다. 전문 웨딩홀과 플래너가 업계의 노하우로 알아서 다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할 것인가. 내 이야기의 결혼식은 이렇게 작지만 개성 있게 열린다. 예식에 비유하고 보니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여러 번 계획했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째, 세 번째 단편집의 테마를 정해두었고 그다음은 장편을 쓸 예정이다. 장편은 오 년 지나고 십 년 안에. 그사이 초단편집이나 산문집을 낼 수도 있다.


앞으로의 일정은 이렇다. 가제본이 나오면 최종 점검한 뒤에 인쇄를 시작한다. 그사이 나는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를 작성하고 배송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다. 글은 한글 문서에 줄줄 쓰면 되지만 책은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알아보려고 마음먹고 찾아보면 또 그렇게 어렵지 않다. 힘들기보단 낯설었다. 책의 판권 면을 펼치면 여러 사람 이름이 나온다. 표지 그림을 제외한 작업을 모두 혼자 했으니 출판사의 출판물과 비교할 때 어설프거나 덜 멋질 수도 있다. 나의 이야기가 주눅 들까 봐 고급스러운 옷을 입혔다. 크라우드 펀딩은 창작자가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창작물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나는 이미 여러 지출을 했다. 펀딩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목표 금액을 적게 정하려고 생각 중이다. 알아보면 곳곳에 독립서점도 있다. 증쇄하는 날도 올지 모른다. 교보문고나 인터넷서점에 판매하고 싶어질지 모르고. 그러려면 출판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내가 출판사 대표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도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신고하고 등록세를 내면 된다. 유통과 마케팅이 문제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다 하지만, 시작은 간단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 이제 나의 첫 소설 묶음은 글이나 원고가 아닌 책이 될 예정이므로 온라인 게시물을 모두 내렸다. 인쇄하는 이야기는 이제 책으로만 볼 수 있다. 우선 이렇게 글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까지는 진행하게 되었다.


표지 그림을 인쇄소에 전하면서 여러 번 수정작업을 해준 디자이너님께도 감사하다. 재능 기부를 해준 셈인데 재차 작업을 요청하기가 너무 죄송했다. 연락은 안 하고 동굴에만 들어가 있는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친구에게도 고맙다. 이 글을 쓰면서 친구의 논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시상식도 아닌데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책 만들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지만 글쓰기가 훨씬 어렵다. 낯선 이의 글을 읽고 즐거워하며 감상을 전해준 독자분들이 있기에 계속 썼고 이렇게 책이 된다. 아무도 안 읽어주면 쓸 힘이 안 난다. 내 책도 아무도 안 사주면 두 번째, 세 번째, 십 년 후 프로젝트는 무너지고 나는 뒤늦게 담배를 배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선택받지 못한 원고인 채 울기보다는 지금의 활동이 좋다.


책이 만들어지면 평소에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락하고 싶은 친구에게 알릴 생각이다. 사실 모든 친구가 내게 먼저 연락을 한다. 친근하게 하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나는 만족스러운 대입 성적을 얻는 데 실패한 이후 실용적인 인간이라도 되기로 단호하게 전공을 결정했다. 대학 친구들은 내가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놀랄 수도 있다. 나는 안다. 나는 늘 나였다는 걸. 동화에 빠진 네 살 아기, 글쓰기 대회에 다니던 초등학생, 글 쓰는 기자와 변호사를 꿈꾸던 중학생, 연애소설에 빠져 공부는 하는 척만 하고 블로그에 홀로 칼럼을 쓰던 고등학생, 주어진 공부를 묵묵히 하던 대학생, 정해진 대로 사회인이 되기까지 나는 나였다. 얘들아 안녕, 이게 나야. 대형 쇼핑몰에 오래 있으면 고문이라 느끼고 이렇게 막 쓰는 거 좋아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심장이 뛰고 땀이 조금 나.


이제 나의 첫 소설은 글자가 아닌 상품이 되었다. 엄마 친구에게 내 글의 링크를 전하며 읽어 보세요, 할 일은 없다. 책이 되면 엄마가 엄마 친구에게 책을 줄 수 있다. 프렌치한 옷을 입은 나의 책을. 내 딸이 이걸 썼어, (나도 아직 한 글자도 안 읽었지만 아무튼) 가져, 하고 말이다. 엄마 친구 딸은 책을 안 썼으므로 엄마가 어느 출판사야? 상 받았어? 등단했어? 이런 질문을 받을 일은 없다. 그저 책의 모습만으로 자랑과 선물이 된다.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네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드릴 수 있다. 할머니는 인스타 계정이 없지만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읽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죽음과 섹스를 읽고 실제 있는 일로 아시면 곤란하다.


나의 책을 가진 사람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나는 가능성을 인쇄한다. 누가 언젠가 읽을지 모르고 웃을지도 실망할지도 놀랄지도 모르는 우연을 출판한다. 영원히 읽지 않는다 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책은 존재만으로 권위와 품격을 가진다. 동시에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이 꼭 그렇게 심각해야만 할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젊고 건강한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어서 책을 내고 두 번째 소설집에 집중하고 싶다. 친구가 나의 책을 라면 받침으로 쓰면 기분이 나쁠까. 그렇지 않다. 나는 우아한 주방용품을 선물해서 기쁘다. 내가 쓴 이야기를 사람들이 읽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 읽었다면 읽을 만해서 읽었을 거고 취향이 아니면 안 읽을 것이다. 책은 능동적으로 읽어야 무엇인지 알고 비판하고 감상을 말할 수 있다. 이미지는 보이고 사운드는 들리지만 텍스트는 읽어야만 읽힌다. 내가 사람들에게 대화를 청하는 방법은 문장이다. 나의 문장이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기를 바란다. 이야기에 문제가 있어 혼나야 한다면 반성하고 나아질 것이며 근거 없는 비난은 무시할 것이다. 조금은 사랑도 받고 싶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어떻게 지냈냐 물으면 나는 조용히 상품 하나를 내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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