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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n 05. 2021

셀린의 픽션들

<픽션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의 두 번째 픽션을 막 다 읽은 나는 크루아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닐라 크림을 올린 크루아상이 입안에서 바사삭 바스러졌다. 베이커리는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 소란스러웠다. 각 소설은 짧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뭘 대단히 사실처럼 써 두고 각주를 잔뜩 달았는데 허구가 많다. 독자는 픽션들을 읽으면서 속아 주고 소설가의 엉뚱한 머릿속에 감탄한다. 술술 넘어가는 글이 아니라서 조금 읽다 지쳐 빵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쪽에서 아이가 걸어 들어왔다. 젊은 부부는 집에서 나온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세 식구는 4인석에 앉았다. 아빠는 커피를 주문하러 가고 엄마가 아이의 점퍼를 벗겨 주고 있었다. 아이는 하늘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낯익은 세로 스트라이프 국기 무늬. 하늘색 흰색 줄무늬가 예쁜 축구 유니폼이었다. 부부가 메시 팬인가. 아장아장 걸어 빵 코너로 가는 뒷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보고 있자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생각났다. 마침 종강 시즌이라 친구들과 거리 응원에 갔다. 경기 한참 전부터 자리를 맡느라 거리에 오래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에게 4 대 1로 참패했다. 그때 차가 끊겨 코엑스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후반전부터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서 나도 갈까 하다 애국심으로 끝까지 봤다. 역전골을 터트리지 못하고 경기는 끝났다. 친구들 두 명과 셋이서 캔맥주를 마시며 집으로 걸어오는데 신호등이 꺼져 있어서 횡단보도를 마음대로 건넜다.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잠들었던 기억이 났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여자아이는 분홍색 머리끈으로 양 갈래머리를 하고 있었다. 축구와 머리끈의 불균형에 끌려 아이에게 자꾸 눈이 갔다. 내 가방에 달려 있는 축구공 모양 액세서리를 줄까 망설였다. 아이 부모가 거절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만두었다. 나는 야구보다 축구가 좋다. 골대를 향해 달리고 골망을 흔드는 통쾌함이 좋다. 보르헤스는 이런 책을 쓰면서 골망을 흔드는 쾌감을 느꼈을까. 픽션들을 읽으면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 읽고 딱히 할말이 없었다. 보르헤스처럼 픽션 아닌 척하는 픽션이나 써 봐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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