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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n 09. 2021

무죄 추정의 원칙과 R/O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영화는 상상력이 풍부한 주인공 지지를 중심으로 흐른다. 지지는 그가 어쩌다 흘린 짧은 실 하나로 실뜨기를 한다. 그는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녀는 그에게 홀딱 반해서 그도 자신에게 반하기를 간절히 원한 나머지 둘이 같은 생각이라 착각하고 만다. 물론 그가 전혀 반하지 않은 건 아니다. 반하고 안 반하고는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 중 한 곳만 들어가는 것처럼 나뉘지 않는다. 그도 그녀에게 어느 정도는 반했을 것이다. 28.7% 정도. 다시 말해 71.3% 정도 반하지 않았다. 즉 그는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다.      


  서로를 좋아하는 관계는 기적이라 한다. 그가 나에게 반하는 동시에 나도 그에게 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반하기도 쉽지 않고 상대도 그러할 텐데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니 어려워 보인다. 한 번에 서로 다른 한 사람만을 열렬히 찾는다면 그렇다. 그러니 80억 인구 중에 너와 나,라는 말도 나온다. 서로 통하는 일이 훨씬 쉬워지는 방법이 있다. 대부분의 상대가 나에게 반하면 된다. 내가 반한 상대도 웬만하면 나에게 반했을 테니 마음이 통하기란 수월해진다.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기는 어려우므로 다시, 지지로 돌아가자.     


  지지는 ‘그는 나에게 반했다’를 전제한다. 명함을 줬으니까, 즐거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왠지(?) 그런 느낌이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는 지지에게 반해야만 한다. 아니, 반했다. 그 이유는 a, b, c 등이 있다. 지지는 증거를 모은다. 전문가 의견도 듣는다. 전문가란 어떤 순간에도 지지의 편인 친구들이다. 지지는 확신한다. 그리고 실을 뜬다. 친구에게 손을 빌려 거미줄 모양 실을 만들고는 그에게 가지고 간다. 어때, 이쁘지? 너가 준 실로 만들었어. 그는 실없이 웃는다. 그리고 다른 실뜨기에 열중한다.     


  지지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 반한 게 잘못도 아닌데. 그렇지만 죄라 하자. 95% 이상 반한 감정을 죄, 반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죄인이라 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보자. 죄인의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유죄(반함)의 판결이 선고(고백)되어도 확정(수락)되기 전까지 무죄(안 반함)의 추정을 받는다.     


  둘의 감정을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또는 ‘나는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로 간주하자. 프로젝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는 나에게 반했다’와 ‘나는 그에게 반했다’를 동시에 만족해야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안 반해도 결과는 실패다.      


  그가 먼저 그녀에게 구애한다는 법조항을 폐지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나’와 ‘상대’로 부르기로 한다. 웬만해서 상대가 나에게 반할 리가 없으므로… 안 반했다고 가정하자. 어찌어찌 유효슈팅을 때리며 마침내 골망을 흔들었다 해도 무효 처리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완벽한 골이어야 한다.      


  물증만 없지 심증은 가득해도, 기다린다. 그 심증이 나의 상상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죄인이라도 그 죄가 증명되지 않았다면 죄인이 아니다. 상대는 선량한 사람이거나 법을 교묘히 악용하는 사람이다. 어쨌든 나에게 반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나에게 반했다는 사실, 즉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 원작 에세이 <He's Just Not That Into You>를 보자.     


  When men want you, they do the work. (p. 14)     


  If I were into you, you would be the bright spot in my horribly busy day. Which would be a day that I would never be too busy to call you. (p. 23)     


  Remember: Men are never too busy to get what they want. (p. 30)     


  즉 구속을 원하면 확실한 증거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상대는 말할 것이다, 입이 있으니까. 상대는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다리가 있으니까. 상대는 한정된 자원(시간, 돈, 에너지)을 쓸 것이다, 마음이 있으니까. 반했다면 나를 헷갈리게 하지 않고 골대를 향해 정확한 슛을 날릴 것이다. 상대가 죄인이 아니라는(나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고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 진정으로 죄인이라는 확신이 생길 때 유죄판결을 확정한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순순히 고백하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할까. 그동안 나는 자신을 수사해야 한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은 알 수 없다. 대신 나에게 집중한다. 상대의 마음속을 알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정확도도 떨어지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편이 좋다. 49.5% 정도 죄를 짓고 있을 것이다. 이미 판례가 많이 나와 있으니 그간의 시행착오를 참고하면 내가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 판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상대가 증거를 가져오기 전에 나의 증거가 확실해지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자백해도 좋다. 여기 나, 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인을 잡아가십시오. 현행범으로 체포하십시오. 다만 함께 가야 합니다. 당신과 수갑을 나눠 찬다면 그곳이 감옥이라 해도 좋습니다.      


  애초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죄를 지은 이상 자수가 최선이다. 죄는 잘못이어도 자수는 잘못이 아니다. 자백은 죄인의 특권이다. 지지의 상상이 죄인가. 상상은 자유다. 다만 상상은 상상에 그쳐야 한다. 상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순간 홀로 감옥에 가게 된다.      


  예외가 있다. 상대가 나에게 반했지만(죄를 지었지만) 상대의 골키퍼가 한 골도 허락하지 않을 때다. 이때도 결국은 반하지 않았다. 상대는 골키퍼를 없애거나 무시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안 반한 척으로 증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반하지 않았다고 본다. 상당히 반했다 해도 95%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경우 죄인을 체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체벌할 수도 없다. 자백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같은 죄인은 자신의 죄를 실토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와 함께 수감된 경우, 즉 연인이 된 후에도 사소한 의문에는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좋다. 답장이 느리다=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섣불리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답장이 느린 건 답장이 느린 것이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정황 여러 개가 반복적으로 관찰될 때, 매일 야근을 해서 잠만보가 되었는데 외모에 지나친 신경을 쓰는 데다 핸드폰 이중 잠금을 하는 이 모든 일이 갑자기 동시에 일어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나는 법복을 벗고 의사가 되어야 한다. 죄짓는 건, 즉 상대에게 반하는 건 좋은 일인 데 반해, 상처에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생명을 구할 의무가 있다. 아직 확진은 아니더라도 유력한 진단명에 R/O(rule out)을 붙이고 정밀검사를 시행한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가능성이 있으니 해당 질환을 완전히 배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후에 병원에 가든 감옥에 가든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감정에 정직한 지지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그에 분석과 상상이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매 순간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면 될 뿐.      


  (이 글은 법학/의학 지식이 없는 글쓴이가 비유적으로 쓴 영화 리뷰입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가 보기에는 잘못이 많을 테니 저를 벌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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