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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n 13. 2021

사적인 얘기가 제일 재밌어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이 책에 구매 도장이 없는 걸 보니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산 듯하다. 유명한 책을 언젠가 읽어야지 던져놓고 실제로는 처음 읽었다. 제목은 매력적이지만 손이 안 갔던 이유는 책이 별로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건질 게 없다는 말이었나 그랬다.     


  스티븐 킹의 작법 책이 그러한 비평을 받은 이유를 짐작해 봤다. 그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 없지만 에세이를 보니 글맛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독자는 작법서에서 무언가 대단한 가르침을 받고자 이 책을 펼친다.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 얘기나 가득하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하다. 킹은 잘 쓰지만 남들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면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가장 좋았던 점은 헛소리를 그만 지껄이라는 단언이었다. 나는 이런 원색적인 표현이 순수해 보여서 좋다.     


  책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쓸데없는 것 좀 다 빼 버려라!     


  그가 어렸을 때 고막을 절개한 내용을 늘어놓았을 때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나도 초등학교 때 만성 중이염으로 오래 고생했기 때문이다. 이비인후과에서 엄마에게 어떻게 이렇게 애를 내버려 두냐고 다그친 기억이 있다. 엄마는 나를 방치할 분이 아니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섬세하게 나를 돌봤다.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게 하고 약을 지어줬는데 내가 그 약을 먹지 않았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 적이 있고, 가루약을 졸업하고 처음 알약을 시도한 날 이상하게 생선 가시 생각이 나서 알약을 못 먹게 된 것이다. 가루약 먹을 나이가 아니니 약사는 알약을 지어주었고 나는 먹기 싫어서 몰래 버리기를 몇 년이었다. 그러니 중이염이 나을 리가 없고 결국 고막을 절개하고 인공고막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솔직하게 알약을 먹기 싫다고 고백하고 먹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잘못된 판단과 고집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이 어마어마했다. (이와 같은 에피소드가 여러 개다 ㅠㅠ)     


  수술이라지만 아주 가볍고 흔한 것이다. 인공고막은 귀를 파다가 나올 수도 있어요,라는 선생님의 말을 기억했는데 정말로 어느 날 엄마가 내 귀를 파주다가 인공고막을 발견했다. 인공고막은 귀지처럼 작았다. 나는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다. 커서 일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중이염에 걸린 적이 또 있었는데 그때는 알약을 먹고 잘 나아서 이제는 문제가 없다. 두 번 고생한 왼쪽 귀는 지금도 약하다. 오른쪽 귀보다 조금 작게 들린다. 물에 들어가거나 시끄러운 스피커 앞에 있을 때는 자꾸 귀를 움켜쥔다.      


  이십 대 중후반 이후로는 발열을 동반한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전혀 걸리지 않는 건강한 몸이 되었다. (감기몸살 경험이 전무하다. 술병 말고는.) 알약을 먹을 줄 알게 됐지만 안 먹을 수 있다면 안 먹고 싶다. 이제는 약 먹을 일이 없어 행복하다. (비타민은 당연히 츄잉이다.) 알약을 어묵 국물처럼 후루룩 넘기는 사람은 운전을 휘리릭 잘하는 사람처럼 어른 같아 보인다.      


  고막을 절개하는 공포를 스티븐 킹이 잘 서술해 주었기에 나는 그에게 동질감이 들었다. 중요한 건 중이염이 아닌데.      


  부사 등 쓸데없는 것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쓰게 된다. 더 줄이고 절제하라는 가르침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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