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피고용자

by 아륜

딸애에게 고용된 지 열두 달이 넘었다. 일 년이 되었으니 퇴직금이 발생한다. 챙겨 받지는 못하겠지만.

"엄마, 내가 수아 과자 먹이지 말랬지. 버릇 잘못 들면 책임질 거야? 내가 몇 번을 말해. 못 살아 정말."

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여기서 엄마 두 글자를 빼면 어느 까칠한 사모가 직원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릎이 시큰거린다. 손녀는 한창 이쁠 때다. 깜짝 놀랄 만큼 말이 빨리 는다. 내 말을 담아두었다가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한다. 뭘 하든 사랑스러워 과자를 달라고 조르면 당해낼 수가 없다. 사랑받는 할머니가 되는 순간 큰딸에게 꼭 한 소리를 듣는다.


큰딸은 어려서부터 똑똑했다. 챙겨주려고 해도 알아서 잘 했다.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알아서 했다. 나는 더 많이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딸이 원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과 사랑이 모두 간섭이 되었다. 그러던 딸이 엄마가 되었다. 학교 다닐 적부터 공부 욕심이 많던 애라 직장에서도 가능한 한 빨리 복직하기 원했다. 대외적으로 별다른 일거리가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손녀를 돌보게 되었다. 딸이 얼마를 버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좋은 직장이라 돈을 많이 주고 일이 많다고 들었다. 산후조리를 마친 딸이 달에 백오십 부칠게, 엄마도 용돈 벌고 좋지? 하며 가볍게 제안해 왔다. 나는 우리 이쁜 손녀도 보고 돈도 벌고 좋네 하며 웃었다.


딸은 두 달이 지나자마자 회사로 들어갔다. 몇 달의 공백을 채우느라 제 몸 못 챙기고 직장에 매달렸다. 며칠씩 아이를 데려가지 않기도 했다. 처음에는 딸이 우리 집에 애를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딸이 승진하고 사위의 연봉을 앞지르자 그때부터는 사위의 몫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아침에 애들 집에 가서 수아를 데려온다. 무릎이 아프고 기운이 없는 날이면 딸 집 거실에 눌러앉아 아이를 돌본다. 내 집 근처에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아무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손녀가 예쁘지만, 하루 종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달래고 싶지는 않다. 딸은 요즘 아예 자기 집에 들어와 지내면 어떠냐고 한다. 나에게도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돌이 지난 아이들도 밤에 자주 깨는 모양이었다. 딸도 자야 하고 딸의 남편도 자야 하니, 출근을 하지 않는 내가 밤에도 애를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딸은 나를 고용한 사실을 잊은 듯했다. 나에게도 직장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십사 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셈이 된다. 이백으로 올려줄게, 일에 지장이 생겨서 그래. 엄마, 나 조금만 더 도와주면 안 돼?


딸이 힘들다는데, 엄마가 어떻게 외면하니. 네가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게 낫지. 너는 젊고 아름답고 유능하니까 너의 시간이 더 소중하지. 딸이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입주 도우미처럼 지내라는 큰딸에게 남편이 전화해 험한 말을 하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내 딸인데, 내가 봐 줘야지.


수아가 함니, 함니,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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