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

고개 숙인 턱에 수염이 거칠게 올라와 있었다

by 아륜

지호의 방문이 닫혀 있었다. 똑똑 두드리고 응이 들리면 입장이 가능한 문이다. 밥때가 다 됐는데 나올 생각이 없었다. 싫어하지 않을까 거절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지호야 나와서 밥 먹어. 지호는 매일 보는 검은색 티셔츠에 저번 주에 사 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침에 동네 엄마들과 차 마시러 나갈 때 문은 잠겨 있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고개 숙인 지호의 턱에 수염이 거칠게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이 문득 사랑스러워 보였다.

"지호야 깔끔하게 면도하면 어때?"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는 말은 지호의 단골 대답인 지 오래되었다. 지호 아빠가 없는 평일 저녁 아파트에 우리 둘뿐이었다. 지호는 오전 열 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열한 시쯤 구립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낮에 가끔 전화를 해 보면 카페에서 틀어주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번 주는 남편이 집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주말 내내 둘이 보내게 되었다. 휴일 하루쯤은 지호와 영화도 보고 레스토랑도 가고 싶었다. 지호에게는 여자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주말에도 잘 외출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보면 보통 워드로 이력서를 정리하거나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다.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요즘 마음은 어때? 괜찮아?"

싫어할 걸 알면서도 말을 걸어 보았다.

"그냥 똑같아."

"상우는 잘 지낸대? 요즘은 안 만나는 것 같네."

"보면 불편해. 다들 번듯한데 나만 아직이잖아. 아직 젊고 실력도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나. 마음이 불안해."

지호가 놀랍게도 복문으로 말했다. 저 이쁜 눈이 찡그려지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 집은 넓고 엄마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들은 불행하구나. 아들의 고민과 불안을 살 수만 있다면 대신 가져오고 싶었다.

"만나는 여자친구는 없구?"

"딱히 없어."

지호가 표정을 풀며 높은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내일 엄마랑 놀아줄래?"

다 큰 아들 앞에서 옆집 오빠에게 고백할 때보다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내뱉은 말이었다. 지호의 눈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가늘게 휘어지며 웃었다. 아기 같은 입에서는 알아서 할게 대신 알았어가 달콤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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