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찾는 도서관에 친한 사서 선생님이 있다. 그분이 나를 좋아하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지금 이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 중 그 마음의 크기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 뵌 건 삼 년 전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를 반겨 주시니 안 그래도 좋아하는 도서관을 더 자주 가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즐겁게 책을 읽으러 다녔다. 잠깐의 만남인데도 어디 가서 그렇게 예쁨받을 일이 자주 있지 않기에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선생님이 다른 도서관으로 옮기게 되어 만나지 못했다. 최근에 나도 도서관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 년 만에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몇 번 마주쳤지만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긴가민가해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렇게 친절하고 세심한 분은 아마 전국의 사서 중에 이 선생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정도여서… 용기를 내어 인사를 드리려다 말기를 몇 번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내 이름을 보고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업무책상에서 빠져나와 내 손을 꼭 잡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번호를 교환하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선생님 나이는 아마 엄마와 비슷하거나 조금 젊은 것 같다. 나는 도서관에도 엄마가 생긴 기분이라 좋았다. 선생님은 맛있는 밥을 사주고 나는 내 책을 선물해드렸다.
오늘 몇 가지 볼일을 보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들렀다. 도서관에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나에게 예약된 책도 있고 우연히 꽂혀 만나는 책도 있고 무겁게 들고 온 책들도 반납하고, 무엇보다 선생님도 계시니. 선생님의 근무 일정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오늘 갔을 때 선생님이 거기에 딱 앉아 계실지 안 계실지는 모른다. 보름 정도 안 뵌 것 같다. 오랜만에 선생님이 데스크에 계셨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반가워했다. 겉으로 표현은 잘 안 되었지만 내가 상당히 기뻐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오랜만에’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한 것도 그렇다.
“선생님을 뵈니 힘이 나요.” 내가 말했다.
“내가 그래요. 선생님 보면 내가 힘이 나.”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오기 전에는 힘들었는데.” 내가 덧붙였다.
이러한 감정표현은 평소에 거의 하지 않는다. 정말로 힘이 들어 참지 못할 때만 나오는 말이다.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울고 있었다. 속상하고 피로했다. 지난 몇 달간 울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티 날 정도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거리를 걷다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책상에서 이불속에서. 다 적지 못할 개인적인 일들로, 또 울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어 그렇게 되었다. 실제로 선생님을 만나기 한 시간 전에는 ‘아… 살기 귀찮다… 살기 싫어.’라는 생각을 순간이지만 했다. 그때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낯설어서 이게 ‘죽고 싶다’는 감정인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조금 속상하구나, 그동안 내 감정을 외면해서 그렇다는 걸 즉시 깨달았다. 불행한 이유도 찾아보면 많지만 행복할 이유는 더 많았다.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평온한 이유는 가장 많았다. 감사한 제목이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게다가 도서관에 가는 길이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도서관에서는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선생님은 내가 많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은지 걱정했다. 그러고는 ‘참… 빠지는 데가 없어. 어쩜… 지금 너무 예뻐. 그대로 사진 찍고 싶어. 나만 보기 아까워.’라고 말했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인상 깊었던 이유도 이거였다. 나를 지나치게 예뻐한다는 것. 친절은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예쁘다는 말도 아주 가끔은 들었지만 글쎄, 이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인가? 하고 나는 혹시 내가 ‘예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지는 않다. 선생님은 나의 눈, 코, 입, 뺨, 턱, 어깨, 팔, 허리, 다리, 원피스, 머리, 신발, 가방, 목소리까지 다 예쁘다고 말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쁜 구석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예쁘다x100을 말할 정도는 아니란 사실을 당신도 알 것이다.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 좋기보다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예뻐해 주는 도서관 엄마를 오래 못 봤다가 다시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오늘은 눈, 머리, 패션 등을 칭찬받았다. 요즘 정신 상태가 예전처럼 안정적이지는 않아서 안색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사진을 찰칵 찍고 싶을 정도라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내 글도 함께 예쁨을 받는다. 예쁘다는 말 뒤에는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그러면 나는 선생님의 ‘아유… 이뻐 죽겠어 증말… 으이구’ 하는 표정과 함께 그 근거를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고 싶어진다.
왜 이렇게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냐고 하신다. 그 말씀에 나는 ㅋㅋㅋ 웃을 수밖에. 선생님과 나는 책을 사랑하는 정체성으로 만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나는 놀러 가는 거지만 선생님은 일하는 중이니 오 분 정도 조금만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이 내 온라인 사이트까지 찾아보시지는 않을 것 같으니(제발 안 보셨으면 좋겠다 쑥스럽다) 한번 생각해 보면 혹시 선생님에게 나만 한 딸이 있었는데 지금은 못 보는 상황이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그렇게 짐작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선 예쁨 보따리를 갈 때마다 받는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사이 선생님의 눈빛과 표정, 언어와 손짓을 본다. 지금의 부드러움이 나오기까지 단련한 강함이 느껴진다. 오늘의 날씨, 좋은 근무환경, 그리고 또 나의 예쁨;에 대해 감탄을 늘어놓는 선생님을 본다.
질문을 바꿔야겠다. 나는 왜 이렇게 사서 선생님을 좋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