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말로 표현하긴 어렵네

by 아륜

해 질 무렵 그를 불렀다. 일몰이 더 빨라지기 전에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었다. 술래는 구호를 정직하게 외쳤다. 일정한 속도로 끝이 예상 가능하도록.

주말인데 약속 없었어?

오늘의 술래가 물었다.

그랬나.

나는 불확실하게 답했다.

술래는 팔에 얼굴을 묻고 정해진 대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동작을 그는 발견하지 못했다.

널 노을해.

아이들이 불규칙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응?

노을해.

놀?

노.을.

노을이 뭐야?

노을. 노을 몰라?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노을은 아는데. 노을해?

노을이 영어로 뭐야?

음, 선셋?

영어로도 알면서 왜 못 알아 들어. 내가 널 노을한다니까.

노을이… 좋아한다는 거야?

가운데 서 있던 아이가 술래에게 잡혔다. 술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발각된 아이는 술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니. 노을한다고.

아이는 손가락을 끊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노을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노을이 동사야?

하늘을 봐.

술래에게 손가락을 걸린 아이가 내 쪽을 보며 찡그렸다. 어떻게 끊고 도망가지 하는 표정이었다.

노을을 보면 어떤 기분이야? 무슨 감정이 들어?

글쎄. 말로 표현하긴 어렵네.

난 말로 표현했어. 널 노을한다고.

아이는 빠르게 손을 뺐고 술래는 다음 판을 계속해야 했다.

그럼 우리, 노을할래?

방심한 나는 잡혀버렸고 곧 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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