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폼과 연필

마실 수 없는 차의 맛은 어떨까

by 아륜

우롱티 위 밀크폼이 올라가는 동안 엽서를 쓴다. 빳빳한 종이에 각진 자음과 모음을 판다. 부드러운 연필심이 질감을 잃고 단출해진다. 엽서에 소설을 쓰기에는 자리가 부족하고 시를 쓰기에는 핏기가 없다. 낱낱이 글자를 나누어 의미를 잃은 말들을 흩트린다. 내 몫의 차가 나오고 두 손으로 컵을 쥔다. 거품의 끝을 맛본다. 빨대를 깊숙이 넣어 맑은 차를 마신다. 단단한 단맛을 느낀다. 빨대를 컵에서 빼 끝을 핥는다. 밀크폼은 밀크폼대로 차는 차대로 마셔야 하는데 섞으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순간 빨대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떨어진 것은 떨어진 그대로 둔다. 대신 누워 있는 연필을 올린다. 뒤집어 바로 티에 꽂는다. 둘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엉망이 된 차가 묘한 색을 띤다. 연필을 꺼낸다. 적신 심으로는 더 이상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차를 마주한다. 마실 수 없는 차의 맛은 어떨까. 연필을 빨대 삼아 차에 넣고 빨아들인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는다. 연필을 덜어 내고 차를 마신다. 사용할 수 없는 연필과 음미할 수 없는 차가 나란히 테이블 위에 있다.


ㅡ 손님, 매장에서 일회용 컵 사용하시면 안 돼요. 계속 계시려면 머그잔에 담아드릴게요.


망친 차를 엽서에 쏟는다. 엽서가 젖어 흐물거린다. 엽서를 찢는다. 잘 찢어진다. 찢어진 엽서를 들고 주문대로 간다. 차를 쏟았어요. 다시 만들어 주세요.


ㅡ 원래 안 되는데 그냥 해 드릴게요. 잔에 담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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