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기 자랑대회 10

못하기 감추기

by 아륜

못하는 게 많다. 못한 덕분에 잘하는 것도 있다. 나는 여러 특성을 가졌다. 그건 나의 개성을 지나 정체성에 이른다. 나의 못하기는 소중하다. 못하기는 타인과 구별된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다. 나의 특징에는 못하기와 잘하기가 함께 존재한다. 못하기를 버리면 잘하기도 사라진다. 잘하기를 지키려면 못하기를 버텨야 한다.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잘 느끼는 특성이 있다. 예민한 감각은 고통과 행복을 둘 다 생생하게 받아들인다.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다.


못하기와 잘하기는 한 묶음이다. 둘로 구분하지 않으면 편해진다. 이건 못하는 거고 이건 잘하는 거야, 이런 판단이 들어갈 곳이 없다. 못하기와 잘하기는 결과다. 그 원인이 되는 하나의 점을 찾아보자.


예민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예민한 덕분에 다른 사람의 취향과 불편을 빠르게 파악한다. 예리한 눈으로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도 한다. 자신과 상대방이 조금 더 힘들 수 있지만, 예민해서 잘하는 점 또한 많다. ‘나는 예민해서 나빠‘가 아니라 그저 예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길치야’는 결과다. 길을 못 찾는 이유는? 도로와 건물의 위치가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방향도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유는? 관심이 없어 길찾기 능력이 개발되지 않아서다. 그쪽에 아낀 관심은 어디로 갔을까. 길치는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을까? 어떤 걸 못하는 동안 다른 걸 잘하고 있을 수도 있다. 조금 더 흥미로운 쪽에 몰입하는 것이다.


한 명의 길치로서 내가 길을 걸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안전을 위한 주의력, 주변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하고 핸드폰 사용을 조심하는 정도의 노력을 제외하고는 나와 지금 상관없는 풍경은 흐려진다.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본다. 나머지는 걷는 거리와 관계없는 생각을 하고 있거나, 내가 받는 감상을 탐구하고 있다. 몸이 있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기 위해 그곳을 걷고 있을 뿐 나의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는 것이다. 보이는 쪽보다 들리는 쪽에, 특히 내가 받아들인 직관적 의미에 관심이 많다. 길을 더 빨리 찾는 데 쓰일 에너지가 그곳에 있다.


이런 나의 특성을 바꾸려고 하면 나는 부족한 사람이 된다. 길 찾기는 나의 못하기가 맞다. 하지만 길을 못 찾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양한 잘하기가 공존한다.


나의 잘하기를 위해서는 못하기가 필연적이다. 잘한 덕분에 못한 것이다. 못하는 게 많다면 잘하는 게 많다는 뜻도 된다. 못하기와 잘하기는 세트인데 못하기만 알고 있다면 잘하기를 인지하기 전이라 그럴 수 있다. 못하는 만큼 잘할 수 있다. 못하기는 그래서 자랑할 만한 고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