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포기하기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세계가 있다. 혼자가 시간을 넘어 다른 혼자로 이어지는 공간. 이곳에서는 허구와 사실 구분이 어려워진다. 이야기에 몰입하면 읽는 사람이 감각하는 게 진짜가 된다.
다 쓰고 나면 뭘 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로 완전한 곳. 완벽한 고독이 곧 연결이 되는 자리. 대화 없는 대화. 갈등 없는 갈등. 사랑 없는 사랑. 죽음 없는 죽음이 소설이다.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소설 쓰기 이전에 글쓰기, 앞서 책 읽기, 처음 한글 떼기.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의 독서, 집안에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있는 것. 어느 정도 유전적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어릴 때 글을 빨리 읽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나는 방에 박혀서 책을 읽는 게 좋으니 많이 봤을 거고. 학교에 들어가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계속 금상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잘하는 편인가 봐’ 하고 자신감을 느꼈다. 장래희망도 작가로 적어두고. 책을 읽으면 어른들이 칭찬한다. 나는 재밌어서 보는 건데 바른 아이가 된다. 나도 스스로 괜찮은 학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어떤 과목은 쉽고 어떤 건 너무 싫고. 그러면서 더는 좋은 학생이 아니게 되었다. 적당히 무기력한 학생. 반짝반짝 빛나던 나의 세상은 잠시 문을 닫았다. 성장하며 아무런 꿈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하고 직장을 견디며 막연한 미래를 그리는 삶. 대강 그렇게 지냈다. 틈틈이 읽고 생각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머물렀다. 그러다 이직을 하며 조금 숨을 쉬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니까 악기를 배워보자. 외국 살면 어떨까.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잔뜩 보고 글로 써 보자. 운동은 일기 쓰면서 습관 들이기. 그렇게 기록을 계속 남기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리뷰를 남기다 보니 어휘가 다시 늘어 생각을 문장으로 바꾸는 분량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내 얘기를 많이 쓰게 되었다. 오늘 겪은 일뿐 아니라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러다 조금 웃긴 것 같지만 주인공을 정해 짧은 글을 써보았다. 그게 소설인지는 몰랐다. 그저 재밌는 작업을 한번 해본 거였다. 처음에는 나와 비슷했던 인물이 점점 나로부터 멀어졌다. 멀어질수록 가까이 느껴졌다. 한 장면만 쓰다가 몇 쪽을 쓰게 되고, 다음에는 한 장 더 써보자. 어느 날 작가들이 쓰는 단편 분량을 무조건 써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직장을 쉬었고 시간이 있었다. 머릿속엔 뭔가를 얼린다는 이미지밖에 없었다. 남쪽 끝에 머문 어느 새벽, 겨울이 다가오는 공기 속에서 노트에 첫 문장 하나를 적고 올라왔다.
몇 시간 앉아 있다고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썼다. 어느 날은 많이 쓰고 언제는 하나도 안 쓰고. 그렇지만 늘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쌓이니 무언가 만들어졌다. 쓰면서 생각했다. 나는 쓰는 게 즐겁구나. 나를 표현하길 원하는구나. 그렇게 혼자 쓰기만 해도 좋았는데 독자가 생기면서 소설이 소중해졌다.
소설을 느끼면 내가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