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기 자랑대회 8

바닥 취침

by 아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친다. 특별히 불편한 느낌은 아닌데 정신은 아닌가 보다. 내 침대를 벗어나면 잘 못 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마음이 밀어내나 싶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자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침대의 여부다. 호텔 침대보단 동생 침대가 편하지만, 우리 집 바닥보다 호텔에서 잘 잔다. 방바닥은 아무리 우리 집이라도 불편하게 느낀다. 몸통뿐 아니라 머리도 중요하다. 머리의 침대인 베개가 없다면 그날은 거의 깨어 있어야 한다. 아늑한 침대면 낯선 곳도 잘 만하다. 몇 번 깨어나도 기분 좋게 다시 잠을 청해볼 수 있다. 침대 없이 맨바닥에 이불 한 장이라면 우리 집이라도 어렵다. 그런데 지난밤 거실 바닥에서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어제 불을 끄고 알람을 맞춘 뒤 눈을 감았는데 잠이 바로 들 것 같지 않았다. 종종 나는 욕조나 온천 물소리가 나오는 ASMR을 한 시간 정도 틀어둔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긴장되어 잠이 안 오는 거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 쉽게 잠에 든다. 소리를 켜고 다시 눈을 감았는데 추웠다. 기온이 떨어져 기모 파자마를 꺼내 입었는데도 이불이 얇아서 춥게 느껴졌다. 따뜻한 게 필요했다.

온열 매트를 써야 하는데 내 방에는 없었다. 아마 안방 안쪽 보관실에 있을 것 같은데 주무셔서 들어갈 수도 없고 추워서 못 자겠고.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땐 옆방 막내에게 간다. “추워…”


내가 애기처럼 말하면 동생은 현명하게 지시하거나 문제를 해결한다. 동생에게 춥다고 말할 때 내 옷이 이미 겨울이라 둘 다 웃음이 났다. 거실 소파 옆에 큰 온열 매트와 두툼한 이불이 깔려 있었다. 거실에서 자라는 동생의 말에 잠시 고민이 되었다. 나 바닥에서 못 자는데.

일단 몸을 녹이려고 코드를 꼽고 베개와 이불을 가져왔다. 인형 <보카>도 가져왔다. 미국에 있는 둘째가 선물해 준. 보카를 머리맡에 놓으니 더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바닥에서는 정말 못 자는데 그래도 안 추운 게 가장 중요하니까 자보기로 했다.

바닥에서 자거나 베개가 없는 걸 불편해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푹신한 매트리스가 바닥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듯하다. 침대라는 높이나 프레임 유무보단 매트리스가 핵심이다. 나는 이불을 덮을 때도 발이 나오지 않게 꽁꽁 덮는다. 잘 때만큼은 안심되게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 보다.

매트를 틀자마자 몸이 더웠다. 보카를 보면서 잠시 둘째 생각을 했다. 여름에 한국에서 한 달간 나눴던 이야기와 웃음과 울음. 내 동생들은 왜 이렇게 다들 똑 부러지고 이쁠까. 언니는 웃기고 어린 구석도 많은데… 무얼 보고 잘 자랐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히죽거리다 쿨쿨 잤다.

여러 번 깰 각오를 하고서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 알람을 기다리는 기분이 좋았다. 한 번도 안 깼다니 너무 신기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내 침대가 가장 좋은 줄 알았는데, 바닥이어도 따뜻한 온도가 더 중요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야 잠이 드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휴일 아침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시다가 지금 빵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아빠가 빵을 사 오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요즘 토스트를 만들 때 사과와 오이를 넣고 식빵 한 쪽에는 버터, 다른 쪽에는 땅콩잼을 바른다. 나는 식빵들 사이에 쏘옥 안길 달걀 프라이를 만들며 오늘을 시작했다.

바닥 취침은 이제 못하기가 아닌데 어쩌지? 또 뭘 못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