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는 말이 없다

날 찍어줘

by 아륜

그가 홍채를 조절해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쏟아지는 광채를. 피사체는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검은 옷을 입었다. 주위의 빛을 모두 삼키려는 듯이. 그러나 어두운 배경은 자신을 더욱 강조한다.

그의 프레임 안에 그녀가 들어왔다. 그는 구도를 잡아 본다.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 중에서 더 자세히 바라보고 싶은 부위에 초점을 맞춘다.


피사체는 향기가 없다. 그는 그녀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그녀에게 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향기가 없다. 그가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 그의 시선은 향기까지 닿을 수 없다.


'날 찍어줘.'


피사체는 말이 없다. 말할 수 없다. 피사체는 바라보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녀의 눈동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가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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