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중하듯
엄마가 울고 있다. 엄마는 원래 자주 운다. 왜 우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나 아는 건 엄마가 내 성적표를 보면 웃는다는 점이다. 엄마는 내가 똑똑한 아들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아직 여덟 살이어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일은 없다. 사교육 기관에서 수시로 받는 평가에서 좋은 등급이 나오면 엄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려 알린다. 작은엄마는 이제 엄마 전화를 잘 안 받는다.
엄마가 울면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때 나는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지금 당장 가서 내 작은 팔로 엄마를 안아주며ㅡ실제로는 안기는 꼴이 되어버리지만ㅡ즉각적 위로를 줄 것인가,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깜짝 놀랄 만한 학업적 성과로 엄마를 기쁘게 해 줄 것인가.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똑똑한 위로를 건네는 쪽이 경제적이다. 엄마는 어차피 또 울고 눈물은 언젠가 그치니까.
아빠는 가끔 집에 온다. 집에 온다기보다는 자택 안의 자기 서재에 방문한다. 아빠가 한번 서재에 문을 잠그고 들어가면 여덟 시간은 기본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빠는 유명한 학자인 것 같다. 늘 책과 서류에 둘러싸여 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하며 자랐을 것이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빠도 꽤 똑똑한 사람이다. 나는 아빠의 학구열을 존경한다. 아빠는 모르는 것이 없다. 물론 몇 년이 지나면 내가 아빠를 능가할 수도 있다.
내가 알기로 엄마도 똑똑하다. 아빠 만큼은 아니지만 똑똑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푸는 문제를 엄마도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어려워졌는지 내 노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장면을 보면 아빠가 조금 더 똑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잘못은 아빠가 했지만 말은 아빠가 더 잘 한다. 그러면 엄마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눈물을 흘리며 항복한다.
난 늘 이기며 살아왔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승부를 가를 필요도 없었다. 어디에서나 가장 뛰어났다. 자아도취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엄마의 눈물이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만 울고 싶어진다.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왜 엄마의 눈물을 마르게 하지 못할까. 잠시 엄마를 기분 좋게 해 드릴 수 있지만 우는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 아빠의 무관심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빠가 엄마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거나 아빠 자체를 없애야 한다. 아빠의 삭제는 최후의 수단이 되는 게 좋겠다. 아빠는 엄마의 남편일 뿐 아니라 아버지 역할을 한다. 아빠가 없으면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엄마는 모르는 것이 많다. 일단 엄마는 자기가 충분히 예쁘고 똑똑하다는 걸 모른다. 내가 소중하듯 엄마 자신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엄마에게 이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주고 싶다. 엄마가 두 가지를 알면 조금 덜 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의 증상 앞에 나는 무능력하다. 엄마의 슬픔은 나의 유일한 오답이다. 엄마 앞에서 드는 감정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의욕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학습한다. 월등한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정답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