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커지고 붉어지는 세상
그녀는 누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팔짱을 꼈다. 우리는 한 우산을 덮은 채로 걸었다. 두 번째 만날 때 손을 잡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 번째 만난 날 그녀가 입을 맞춰 왔다. 다음 날 그녀는 우리 어제부터 사귄 거라 알려주었다.
만난 지 삼 주가 되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의 집까지 우산을 씌워주었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뛰어갔지만 막차가 떠난 뒤였다. 그녀의 집 앞 공원으로 되돌아갔다. 벤치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편의점에 가 맥주 하나를 사 와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집에 가기 싫었다. 오늘도 잠깐밖에 못 봤는데 헤어지기 싫었다. 자고 있는 그녀와 가까이 머물고 싶었다. 함께 찍은 사진을 구경했다. 우리의 대화도 다시 봤다. 여기에서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빗줄기가 거세지고 있었다. 벤치에 앉으니 바지 안쪽이 축축해졌다.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로 맥주를 마시고 메모장에 편지를 썼다. 그러다 꾸벅 졸았다. 새벽 세 시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 분 만에 가출을 했다. 아까 입은 티셔츠와 바지 그대로 얇은 카디건만 걸친 모습이었다. 나는 바깥에 오래 있었고 옷이 젖어 추웠다. 이십사 시간 카페에 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녀는 택시를 잡았다.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내렸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녀가 초대한 곳은 호텔이 가득한 골목이었다. 번화가에서 비슷한 곳을 지나가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금지된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네온사인 아래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가장 세련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성큼성큼 들어가 쑥스러운 기색도 없이 카드를 내밀고 키를 받았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생각보다 고급스러운 내부. 적막한 공기. 무언가를 감춘 듯한 냄새. 나는 내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입구에 우산을 세워두고 그녀에게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뱉고서 나를 샤워실로 밀어 넣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씻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방은 침묵했다. 우리는 이불 위에 앉아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가 이런 곳에 처음이고 이런 상황도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였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가왔다. 바깥의 온도와 침대의 온도는 달랐다. 그녀는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녀가 내 목에 입을 맞추었다. 숨이 가빠 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능숙함을 숨기려 하지도 주도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를 믿어주었다. 나는 그녀보다 어렸지만 남자였다.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눈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 이불을 걷어냈다.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겉옷도 걷어냈다. 그녀가 부끄럽지 않도록 옷이 사라지는 속도를 맞추었다. 여러 번 상상했던 그녀의 몸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육체 위로 올라갔다. 아름다운 조각을 감상하고 싶었다. 절제하고 또 절제하면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 맞추고 싶었다. 어려운 기다림이지만 우리의 처음이 예뻤으면 했다. 그녀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우리는 마침내 상상할 수 없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나는 잘 해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좋은 게 뭔지 안 좋은 게 뭔지 잘은 모르지만 나처럼 좋은 거라면 걱정이 없었다.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그녀는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녀의 숨이 나의 귓속을 채웠다. 그녀의 작은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는 작은 세상에서 큰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게 커지고 붉어지는 세상이었다.
주어진 임무를 다했다. 그녀는 나를 책임진다고 했다. 나는 설렘 위에 책임감을 얹었다. 그게 사랑인가 했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스르르 잠이 왔다. 나른한 누나의 목소리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