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그가 아이스 카페모카를 고른다. 카페모카요, 할 때 카의 'ㅋ'을 정확하게 말하는 그의 발음이 인상적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정사각형의 작은 테이블이 우리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준다. 커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힘이 든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숨고 싶은지 모르겠다. 커피가 나오면 가지러 가면서 잠깐 한숨을 좀 돌려야지. 커피가 완성되고 진동벨이 울린다. 내가 늦었다. 그가 잽싸게 일어난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이전의 다른 여자들에게 자연스레 습득한 행동일 것이다.
그는 내 눈을 곧잘 쳐다본다. 그 눈동자에 살며시 시선을 맞춘다. 눈동자가 타들어 갈 듯 뜨끔거린다. 나는 눈을 자주 깜빡이고 얼굴에 자꾸만 손이 간다. 그러다가 내 손을 포갰다 깍지를 꼈다 풀었다 무릎 위에 놓았다 턱을 괴었다가 한다. 그의 눈썹을 본다. 다듬지 않겠지만 자연스럽고 단정해 보기 좋다. 두 개의 눈썹은 그라는 사람을 대변해도 될 만큼 올곧다. 그는 지금 자기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 특별히 따뜻하거나 차갑지 않은 눈빛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눈빛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두 눈에 힘이 실려 있다. 이 정도 생명력이라면 그의 바람대로 꿈이 실현될 것 같다.
그의 입술에 시선이 멎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 그는 말이 많다. 나는 귀담아듣고 떠오르는 말을 답한다. 일부러 맞장구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뜻이 통해 편안하다. 그의 입술은 촉촉해 보이지는 않는다. 립밤을 하나 사서 발라주고 싶다. 무색무취의 립밤을 산 뒤에 손을 깨끗이 씻고 입술에 스틱을 한 번씩 그린다. 그다음 나의 검지 끝으로 아랫입술 한 번, 윗입술 한 번을 쓸어 정리해 주고 싶다. 그대로 두어도 좋다. 총명하면서도 따뜻한 인상에 이목구비도 정갈하고 이만하면 훌륭하다.
생각이 길었다. 이야기에 집중하자. 열기를 품고 말하는 그를 보며 자꾸만 커피를 들이켠다. 그의 이야기와 그의 모습이 합쳐 완전해지고 그것은 예술이 된다. 주변이 시끄러웠는데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용기를 내어 자주 눈을 맞춘다. 너의 눈빛과 나의 눈빛이 서로에게 가닿는다. 여기 카페 맞지. 그렇지, 카페야. 이곳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읽고 쓰는 정도로 용도가 제한된 공간이야. 따라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커피나 마시며 나름대로 쓸모 있지만 지금 꼭 안 하면 안 되는 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있지.
내가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투 샷과 뜨거운 물이 만나 만들어졌다. 다른 것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 취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나에게 인류 최초로 카페인-알코올 변환 효소라도 생긴 걸까. 술을 마시면 나른해진다. 점차 몸이 무거워지고 세상 모든 문제가 희미해진다. 알코올이 아니라면 범인은 바로 너, 나는 너에게 취했다. 너는 이미 다 마신 얼음 컵의 빨대를 가만히 두지 못한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를 때 커피가 좋은 정류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뭐 할지 정하고 나오지는 않았다. 아직 밥 먹을 시간도 아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셔버렸다. 이야기만 나눠도 좋지만 글쎄,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앞에서 충분히 봤으니 이제 옆에서 걷고 싶다. 바깥이 쌀쌀하다. 다행이다. 춥다는 핑계가 생겨서. 바람아, 내가 여기서 나갈 때 더 거세게 불어라. 분위기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느껴 우리가 체온을 나누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길 수 있게. 그래서 그의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어깨를 끌어안을 수 있게. 다 마신 컵을 반납하고 함께 카페를 나선다. 바람이 미지근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셔서 속도 뜨끈하고 내 손도 뜨겁다. 차가운 모카를 마신 그의 입술 가장자리에 모카 시럽이 묻어 있다. 알려줄까 말까. 닦아줄까 말까. 티슈를 꺼내 줄까. 나는 여기 초코 묻었어요,라고 말하곤 내 엄지로 쓰윽 그의 입술을 닦아 그대로 손가락을 내 입에 넣어 웃어본다. 아, 네, 고마워요.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