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함 속 달콤함
그녀는 단골 카페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카페 가운데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거실 소파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크기가 다양한 테이블이 불규칙적으로 놓여 있었다. 안쪽 벽에는 스크린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녀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바깥바람에 차가워진 양손으로 머그잔을 쥐고 온기를 누렸다. 소설을 읽고 있던 그녀는 숨죽인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문학과 영화, 음악은 한데 어우러져 그녀의 배경이 되었다. 헛헛한 고독은 곧 화사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꺼냈다. 글쓰기는 쓴 하루를 달콤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이었다. 무엇이든지 꿈꾸고 저지르는 세계에서 그녀는 주인공이었다. 새하얀 창이 열리면 이제까지 없던 환희와 고통이 태어났다. 테라스 밖 하늘에는 오후 두 시의 햇빛이 쏟아졌다.
그녀에게서 한참 떨어진 소파에는 그가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남자의 테이블에는 아이스커피 한 잔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커피를 가지고 그녀 앞으로 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책 좋아하세요?” 그가 말했다.
“네?”
“소설 좋아하세요?”
“…”
“잠시 앉아도 될까요?”
그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책을 보았다. 그녀의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소설 좋아해요.”
그녀는 입을 열어 문장을 만들었다.
“같은 시리즈네요. 봐도 될까요?”
그는 그녀의 책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책을 건네주고 그의 책을 펼쳐 빠르게 넘기며 구경했다.
책을 돌려받은 그녀는 그의 커피를 보다가 말을 건넸다.
“커피… 드시러 오셨나 봐요.”
그녀는 말을 뱉자마자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책 읽으러 왔어요. 커피는 덤이죠.”
그가 웃었다.
“그러시구나.”
“블랙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단 커피를 좋아해요. 비엔나 커피를 제일 좋아하는데 보통 카페에 잘 없어서요. 오늘은 아이스 모카 시켰어요.”
그가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비엔나 커피가 뭐예요?”
“아메리카노 위에 크림 올린 거예요. 독특하죠?”
그는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요? 이상할 것 같은데. 쓴 아메리카노 위에 우유도 없이 갑자기 휘핑을 올리면.”
“맛있는데. 잠깐만요.”
그는 말을 마치고 스푼을 가져왔다. 아이스 모카 위에 있던 휘핑크림은 통째로 그녀의 아메리카노 위로 자리를 옮겼다.
“어때요. 예쁘죠?” 그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커피를 바라보다 스푼을 뺏어 크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달콤한 맛이 그녀의 온몸에 퍼졌다. 그녀는 하얀 크림을 자신의 커피에 전부 녹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잠깐만요, 저으면 안 돼요. 그대로 두고 각자의 다양한 맛을 음미해야 해요. 천천히요.”
그가 다급히 말하고 스푼을 되찾아왔다.
“일단 이렇게 크림을 먹다가,”
그는 그녀가 썼던 스푼을 사용했다.
“충분히 먹은 것 같으면 그때 젓는 거예요. 그러면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아메리카노만 먹으면 쓰잖아요. 그런데 크림이 조금 녹은 아메리카노는 달라요. 씁쓸한 맛 속에 달콤함이 조금 묻어나거든요. 천천히 드셔 보세요.”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화끈거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한강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한강에서 비엔나 커피를요? 커피보다 더 어울리는 게 있을 텐데요.”
그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커피보다는 맥주가 자연스럽죠.”
그녀가 처음 보는 비엔나 커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술 마실래요?”
그가 장난을 거둔 눈으로 물었다.
“언제요?”
“크림이 완전히 녹아 부드러워지면요. 그때가 좋겠네요.”
그가 따뜻한 비엔나 커피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