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19.
불빛 한 점 스미지 않는 야릇하게 침울한 듯한 새벽, 잠들지 못하고 내내 뒤척이다 겨우 혼곤해지려는 찰나에, 자다 깬 어린이가 품으로 달려와 귀신 타령을 한다.
두어 시간 제 방과 안방을 오가며 실랑이를 벌이다 녀석은 겨우 잠이 들고, 놓친 잠을 더 이상 붙들 수 없던 나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녀석의 요청대로 거실에 널브러지고 만다.
새벽어둠 속의, 아직은 테두리만 어설프게 보이는 사물들은 어린이의 공포가 되는 귀신처럼도 보이다가, 흠칫 놀라 눈을 몇 번 깜박이면 어느새 본래의 실루엣을 드러내며, 덩달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게 안도감을 전해 오기도 한다.
적요 속에 간간이 들려오는 알지 못할 소리 또한 두려움으로 자리하다가,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 형체건, 소리건, 또 다른 무엇이건 뚜렷하지 않으면 실체를 비켜 간 상상을 하게 한다.
결국은 내가 만들어낸 공포에, 의혹에, 착각에 내가 묶이고 마는 위험한 덫에 걸린다. 그래서 내게 희미한 것은, 모호한 것은 시험에 들게 하는 것과 같다.
부질없는 상념의 시간을 보내고 맞는 아침은 더할 나위 없이 피로하다. 밤을 샌 후의 하루를 이제는 정말이지 견디기 버거운데, 그럼에도 낮잠 한숨 청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은 나에 대한 저항이 아직 내게 남은 것인가.
두려움에 떨며 매일 잠 못 자던 어린이는 어느덧 청년이 다 되었다. 여전히 불확실한 존재의 두려움은 지니고 사는 듯하나, 다행인지 미래의 불확실성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열아홉의 청년은 대학을 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어둠 속 어설픈 형체에서 귀신을 상상한 것과는 달리 미지의 세상 속 뚜렷하지 않은 무언가에선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물었다. 청년은 답했다. 대학이 불확실성을 깨끗이 씻어낼 수 없듯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그렇기에 나의 선택도 수많은 불확실한 것 중 하나일 뿐이다.
다 자란 듯한 청년의 의견을 존중해 이내 받아들이긴 했지만, 세상의 편견과 차별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감내할지 내심 염려가 된다. 열아홉 청춘은 무척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세상은 변할 것이다, 아니 변해야 한다, 그래서 나부터 변하려 한다.'
뚜렷하지 않은, 불분명한 미래의 형상을 상상하는 것마저도 나는 힘겨운데, 청년은 마치 미래가 제 눈에 보이는 듯 다분히 긍정적(티 내지 않을 뿐, 누구보다 불안할지도 모른다.)이다.
암흑 속 흐릿한 사물에서 오는 두려움이 불빛 한줄기면 이내 해소되듯, 우리의 불확실한 앞날에도 조명탄 하나만 터져주면 좋겠다는 가당찮은 망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