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3.9.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차렸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있던 주변 환경, 그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의 알 수 없는 슬픔과 공허. 나의 결핍은 겨울의 어느 날, 물이 담긴 양은 주전자가 엎질러진 그날부터 시작되었던 듯싶다. 일곱 살의 번뇌는 물음을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채 속으로만 되뇌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타고난 성정이 명랑 쾌활 활달했으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슬픔의 그늘과 함께하곤 했다. 유년기 내내 그러진 않았다. 금세 잊혔으나 온전히 '나'로 남았을 땐 마음 한편이 늘 서늘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하게,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임을 인식했었던 모양이다.
누구도 나의 괴로움을 눈치채진 못했다. 환하게 짓는 웃음 아래에 슬픔이 가늘게 누워 있는 걸 보는 이는 없었다. 그럭저럭 탈 없이 보내다 맞은 고3의 사춘기는 꽤나 자극적이었다. 깊숙이 묻어둔 결핍의 뿌리를 타고 가슴속에 잘게 흩어 놓은 욕구들이 무섭게 게워질 때, 꼼짝없이 나의 의지도 박살이 났고 애먼 짓의 피해자는 결국은 나일뿐이었다.
쓸쓸하게도,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운명을 믿고 싶지 않았다. 팔자소관이라는 말이 참 거슬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운명을, 팔자를 편한 대로 가져다 쓴다. 정말 쓸쓸하게도, 내 의지로 채울 수 없는 결핍들을 그것만이 잠시나마 메워 준다. 나의 결핍은 심하게 웃자랐다. 이제는 명랑한 웃음도 지어지지 않아, 쉽사리 그 사실을 감출 수도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많은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끊이지 않는 물음 속에 잠긴 어린 나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지 못했다. 더 깊은 은폐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는 듯 살았다. 그리고 순응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안온의 품이 더없이 좋았으나 이내 쓸쓸했고, 슬펐다. 어린 나는 꽤 외로웠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어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