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0.
몇 달 새 몸도 맘도 더 늙어버린 듯하다. 집이 모양새를 갖춰 갈수록 마음속 공터엔 허허로운 바람만 분다. 몸은 왜 이토록 피로한지. 그녀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을 뿐 사실 그때 나는 참 많이 힘에 겨웠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노동의 강도였지만 스스로 최면을 걸며 깡으로 잘 견뎠는데, 그 긴장이 풀어지기 무섭게 억지로 눌러 놓았던 것들이 하나씩 들고일어나며 나를 공격한다. 오만 가지 증상에 덧붙어 이제는 가려움증까지 동반한다.
열흘 남짓 전 새벽, 천장이 빙글빙글 돌던 그날 이후로 목 주변이 가렵기 시작했다. 전에도 간간이 팔이나 어깨 등등이 이유 없이 가렵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모기에 물려 퉁퉁 뭐같이 부어올라도 웬만해선 긁지 않고 잘 버티는데 이번엔 나의 인내도 무력하게 자빠졌다. 밤새 긁다 아침이면 조금 덜하고 또 저녁 무렵 가렵기 시작하고 그러다 하루 종일 가려웠다. 얼음도 갖다 대보고 차가운 오이도 붙여보고 로션도 듬뿍 발라보고 별짓을 다 해보는데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내 목을 보고 놀랐다. 알지 못하는 사이 오돌토돌 닭살이 되어 있다. 병원에 가보긴 해야 하는데 이곳은 아직 많이 낯설다. 참 유난하게 겪는다. 남들은 티도 안 나게 잘 넘기더만 나는 왜 이렇게 별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나마 꾸준히 삼키던 알약도 이제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듯싶다. 마치 술기운에 불콰한 듯 이제는 대놓고 종일 얼굴이 붉다. 더웠다 추웠다, 몸은 변덕이 죽 끓는다. 일일이 힘겹다 말하는 것도 구차하고 귀찮고 짜증 나서 그냥 혼자 국으로 앓는다. 지레 지치고 말지만 그게 외려 맘은 편하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세세히 설명한다 해서 어찌 알겠으며 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유난을 떨 것도 없다 싶은 거다. 기껍게 받으리라 매번 생각하지만 그게 결코 반길 만한 증상은 아니기에 벌써 여러 해 유난스레 낡아가는 나는 좀 고통스럽다. 더 후딱 늙고 낡아, 편안해지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몹시 피로한 나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에 들려온 부고는 가슴속을 연하게 할퀴는 듯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작은 누나, 나의 고모가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아버지 생전에 그 고모 애를 무던히도 먹인 걸 안다. 늘 청산해야 할 부채감을 갖게 하던 존재여서 괜하게 죄스럽고 미안하고 그랬었다.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면서 말이다. 거센 바람과 비를 뚫고 내려가 허겁지겁 고모의 평안한 영면을 빌고 새벽어둠과 함께 올라와야 했다.
이제는 정말 고아가 돼버린 고모의 걸출한 자식들도 하릴없이 세월을 이고 있는 걸 보면서 사람살이 잘나나 못나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과의 짧은 인사 후 또 다른 그들과도 마주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통증이 새어 나와 잠시간 나를 아프게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인 그들과의 해후는 어색하고 난처했으나, 반갑고 아쉬웠다.
세상 많은 별스러운 것도 죽음 앞에선 하찮듯 생은 장엄한 죽음을 위한 찬란한 변주일 뿐이다. 지금 요란하게 앓고 있는 모든 건 세월과 함께 씻기고, 묻히고 종내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부질없다. 흘러가는 대로 버려두고 따라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법이다. 잘 알지만 쉽게 따르지 못하기에 생은 어렵고 복잡다단하다.
쓸쓸하고 덧없는 생, 아름답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큰 녀석은 세 시간여 버스와 전철을 너덧 번 갈아타고 먼 곳에 시험 보러 갔다. 아름답게 연주하고 돌아오기를. 창을 통해 기어드는 가을 햇볕이 풍성하다.
그 해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힘겨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도 크게 마음 두지 않으며 살았다. 그보다 더한 일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제때에 불행을 감지하지 못하면 더 큰 화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모든 일은 또 지나가게 마련이라 죽을 것 같은 시련도 세월이 더 흐르고 보면 별것 아닌, 기껏해야 생의 부스럼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거면 삶이 이렇듯 까다롭고 복잡하지도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