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독백

2009.03.11.

by 백경


내게도 한땐 내리쏘는 한낮의 햇살처럼

뜨거운 열정이란 게 있었지
밤이 되면 싸늘하게 거두어질 걸 알면서도
그 더운 기운 속으로 무연히 뛰어들던

그런 때가 있었어


우련하고 삭막한 빛이 감도는 사무실 한 켠에서
아이들의 재재거림도, 아내의 달근한 속닥거림도

먼지 쓸 듯 털어버린 채
하늘이 내려준 금줄이라도 잡은 듯

찢기는 아픔도 달게 삼키며
갖은 애를 쓴 무수한 날들 위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이 굳건히 서고
나를 향한 그들의 진득한 믿음과 존경까지도

절로 샘솟을 거라 생각했었지


참으로 우둔한 착각이었어
타오르던 한낮의 열기가
그토록 빠르게 어둠으로 둔갑해
무방비의 나를 덮치리란 생각은 못했던 거야


아이들의 맑은 눈에 비치는 내 형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흐릿하고
더 이상 그들의 부서지는

재잘거림은 들을 수가 없어

가슴속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늘 함께하던 아내도
이제는 침묵하지 않고

새된 소리로 집을 휘갑쳐
더 이상은 나의 부유조차도 허락하지를 않아


내 열정의 빛은 점점 사위어가고
그럴수록 희미해지는 내 명줄 같은 금줄은
기껏 실오라기 하나로 대롱거리니
놓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처지로
오늘도 흐를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다
혼곤한 잠 속으로만 잦아들겠어


이게 정녕 삶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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