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속절없다

2015.09.20.

by 백경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부피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생은 기대보다 별것 아니고 부지불식간에 드는 욕망도 세월 따라 죄다 하찮게 여겨진다. 남은 생의 길이가 저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돌 때까지일지 거길 지나 더 굽어진 오솔길을 헤매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숨차게 여기까지 온 것만은 확실하고 다시 걸어갈 길이 얼마간은 또 남아 있음도 자명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듯 간혹은 초탈한 듯 허세를 부려도 보지만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게 무수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고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처럼 제한되고 편협한 시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맞을 테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으나 제대로 풀이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드물게는 든다. 나'만을 놓고 보면 지금까지의 삶이 대부분 위장된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생은 영원히 혼자이나 생의 방식은 절대 혼자일 수가 없는 근원적 모순으로 인해 나는 나'를 온전히 잘 감추고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드러낸다고 그다지 달라질 것도, 굳이 드러낼 것도 이젠 없다. 은폐한 나'가 얼마나 대단한 인내를 했던가 싶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결국은 헛된 것일 뿐. 저항 속에 있을 때는 그것의 덧없음을 알지 못한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안타까운 생(生)의 그 찰나를 너무 긴 듯 지난하게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내 생의 절반 이상이 한순간에 지났다.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가 전하듯 나는 변하고 있다. 끝일 것 같았지만 새로운 시작이 움트고, 고난의 길 위에서 뜻하지 않은 보석을 찾게 될 수도 있을 테다. 운은 움직이는 것이다.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바르게 서야 그 흐름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배려도, 희생도 모두 부질없게 된다. 이제는 괜찮다고만 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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