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기 위해

2017.6.28.

by 백경



20170627 어르신이 주신 빨간 종이, 행복이 멀어지더라도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쓴다. 맘에 들지 않는 서체를 따라 쓰며..




모든 처음'은 낯설고 서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능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익숙함은 오래지 않아 반갑지 않은 타성을 불러온다. 신선함이 없는 노련미는 점점 독창성을 잃고, 어색하진 않으나 일정한 틀에만 박혀 재미도, 감동도 없다. 종내엔 사진 속 글귀처럼 간간이 행복과 멀어지기도 할 터이다. 일도, 사랑도, 우정도, 삶도 그 익숙함 후의 안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겹고 힘겨웠던 귀 치료가 지난주에 끝났다. 일주일에 한 번 캘리그래피 때문에 집을 나가는 것도 힘겨워 죽을 맛이었는데 주중에 두 번씩이나 그것도 병원을, 게다가 버스도 타고 가야 하는 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프니 하릴없었고, 자주 가다 보니 잘 못 알아먹었던 의사의 말도 서서히 친숙해져서 귀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 친숙함이 그다지 달갑진 않았지만 처음의 그 기막힌 생소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익숙해져서 좋은 건 편안함이다. 나 또한 어느덧 내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드물지만 편안할 때가 있다. 체념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지라도 서서히 내 생활로 인정하게 된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 빈번하게 저항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편안함 속에 허물없이 기생하는 나태'를 발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권태로운 일상 속 안일'은 마취제를 투여한 몸뚱이 같다. 일시적인 감각의 상실일뿐, 마취가 걷어지면 이내 편안함 곳곳에 통증이 수반되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속에 감춰진 권태를 섣불리 지나칠 수가 없다.



간밤엔 꿈을 꾸었다. 꿈속에 뜬금없이 등장한 여러 남자(모두 낯선 얼굴들이었다) 중 한 사람은 내게 말했다. "이제 나란 존재는 당신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라고. 화들짝 놀라 금세 깨고 말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답해주고 싶었다.


"나도 힘겹게 내 삶에 익숙해지고 있고 때로 편안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졌다고 최면을 걸었었는데, 오래지 않아 숨어있던 통증들이 기어 나와 일상을 삼켜버렸다. 행복이 목표가 아닌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아름답게 살고 싶은 건 변함없이 그대로다. 그래서 지금은 익숙함을, 편안함을 꿈꾸지 않는다. 어제 같지 않은 오늘을 기대하고 오늘과 또 다른 내일을 희망하는 중이다. 변화에 뜨악했던 내가 변화 너머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Que sera 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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