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것을

2017.7.19.

by 백경


내려놓고 사는 것과 체념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나는 과연 전자인가?


한여름의 쓸쓸함은 가을의 그것과는 다르게 사뭇 질척거린다, 몸도 마음도.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 밥을 하고 먹고 치우고 소파에 들러붙어 커피를 내려 홀짝대다 나른하게 티비를 보고 시간의 흐름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오를 한참 넘기고 배고프지 않은데도 다시 끼니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멍하게 티비가 떠드는 의미 없는 소음에 귀 기울이고 뒹구는 먼지를 채집하고 어느새 저녁이 되고 아이의 밥상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끈적이는 하루의 얼굴을 씻고 자정을 넘기고 잠자리에 들고 뒤척이고 깨고 꿈꾸고 다시 깨고 꿈꾸고 그렇게 반복하다 동이 트고 어제와 닮은 오늘 새벽에 또 밥을 하고 먹고 치우고... 감동이 없는 하루들이 순식간에 지나고 그것을 평온이라, 평안이라, 평화라 뇌까리며 어제를 되풀이해 오늘을 또 산다. 무미와 쓸쓸함의 끝판이다.


늘 집구석만 휘젓고 다니면서도 강박처럼 시간을 쪼개 분주히 종종거렸는데, 언제부턴가 시간의 밑바닥에 빌붙어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눈꺼풀을 까뒤집으면 삽시에 생의 종착역에 버려진 내 껍데기가 눈앞에 있을 듯만 싶다.


오래전 글들을 읽다가 그때의 내 마음이 그대로 보여 훅 쓸쓸해졌다. 시간이 속절없이 너무 많이 흘렀다. 잃어버린 시간들.


상실한 세월만큼이나 늙고 그악하고 괴팍하게 변한 글. 품위 있게 정제된 문장은 찾을 길 없고 그윽한 은유 하나 없는 바싹 마른, 생선 가시 같은 토막글들은 허섭쓰레기에 지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끄적여야 숨통이 트이는, 간절과 비애.


폭염에도 어김없이 찾아드는 냉기를 쫓기 위해 뜨거운 매트 속으로 무연히 기어들어 솜이불을 덮고 땀을 짜내며 앓아야 하는 진풍경을 여전히 시전한다.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후비적거리다 천천히 빠져나간다. 바람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내 바탕에 깔린 쓸쓸'은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변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는 안 되고 자꾸 졸음만 온다. 낮잠이라도 늘어지게 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해가 뜨면 잠을 잘 수 없다는 뇌의 착각 때문에 토끼 눈을 하고도 꼿꼿이 버티고 만다. 불면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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