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2013.3.29.

by 백경



읽다가 팽개친 책이 열 권 남짓 책장 한 켠에 쌓였다. 이백 여권의 책을 들인 건 아마도 허영이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 또 다른 결핍의 틈을 메우기 위해 얕은꾀를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적 책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숱한 시간을 건너며 왜곡되었을 테다. 내가 정말 책 읽기를 좋아했다면, 글쓰기를 갈망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단절한 채 살아갈 수는 없었을 터, 나의 상상이 빚어낸 그럴듯한 허구의 나'가 아닐까 싶다.


십여 년 전 마지막 회사에 사직서를 낼 때 이유를 묻는 임원에게 마땅한 구실이 없어 얼결에 가져다 쓴 말이 글쓰기였다. 마치 오랜 꿈이었던 것처럼 저는 꼭 한 번 쓰고 싶습니다,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잠깐을 제외하곤 그날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글쓰기를 뜬금없이 입 밖으로 내놓고는 실제의 나'가 아닌 상상의, 허구의 나를 만든 셈이다.


내가 아는 나'는 다양하기 그지없다. 내가 모르는 나'까지 치자면 걷잡을 수 없을 테다. 남들이 보는 나'의 반 이상은 어쩌면 실제가 아닌 허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글로 요설을 떠는 것 또한 나에 대한 가공일지도. 그렇다고 다분히 가식적이진 않다.


몹시도 덜컹거렸던 삼십 대를 지나 벌써 오래전 가파르게 마흔을 넘었다. 마흔을 지나며 지금껏,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말다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어떤 결론도 공감도 이해도 이끌어내지 못하며 오랜 시간 대척해 있는 나'와 나. 그로 인해 아까운 시간을 부질없게 쓰고, 젊음과 패기는 아주 쉽게 절로 소진해 간다. 그렇지만 마흔 전 어느 한때 나는 내 안의 나'를 오롯이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그냥 되는대로 떠밀려 흘러갔을 뿐.


마흔 전의 내 삶은 잘못 기술한 프롤로그 같다. 펼쳐질 서사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끄적이다 만 어설픈 머리글. 홀로 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제대로 나'를 관찰했더라면 그런 식의 아둔한 몸짓들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인간만이,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 했던가. 그 사실을 잊은 채 너무 오래 일방적으로 내 안의 나'에게 통보만 했었다.


나와의 소통은 고독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배경이 현란하면 나'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이려 애쓰는가. 얼마 전 <카프카의 서재>를 읽으며 일순 전율했던 문장.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뒹군다." 몽테뉴가 한 말이다. 저자가 그의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며, 행복을 누리는 한 방식으로 몽테뉴를 읽는다고 한 이유를 금세 알아차릴 만했다. 나도 나 자신 안에서 부단히 뒹굴긴 하나, 늘 적대적이며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 나는 웬만해선 나'를 설득하지 못한다. 어쩌면 여전히 나는 나'와 소통하지 못한 채 단지, 마주하고만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의 어리석은 몸짓들을 피하기 위해 혼자이려 애쓰는지도. 비겁하다.


내 이름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한때는 직위가 이름을 대신했고 시간이 흘러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는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불면하던 어느 밤 문득, 항상 전투적이던 내가 나직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다. 희한하게도 나와 늘 대척하던 내 안의 나'가 격하게 움쭉한다. 그 밤, 아주 잠시지만 나는 나'와 오랜만에 하나가 되어 길고 어둡고 황량한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과 안일을 맛보며 조용히 흐느꼈다. 당혹스러운 기억이다.


늙어가며 어릴 적 친구들이 더없이 좋은 이유가 그들이 내 이름(내 안의 나)을 불러 주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전 잃어버린 세월에 너무 쉽게 잊힌 내 이름이 한 시절을 공유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자연스레 불려질 때 가끔은 뭉클하다.


몇 달 전 읽다 던져둔, 숙제 같은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다시 꺼내 읽으며 나는 로라와 아녜스 중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봤다. 뒤섞여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녜스에 더 가까운가.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겠다. 내 머리와 몸뚱이는 늘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말이다. 회의에 찬 머리를 가졌다는 아녜스는 왜 죽음에 이른 것인가. 이제 삼분의 일이 남았다.


오늘도 나는 분분히 뒹군다. 나는 긍정의 방향으로 회유하려 하나 당최 비대한 나'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나'는 흔들리는 바위인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내 안에서 분분히 뒹굴었으나 나'를 못 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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