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하다

2017.7.24.

by 백경


아름답고 매혹적인 청춘에 마음이 앗겨 며칠 넋을 놓고 지냈다. 넘치는 남성미에 속이 일렁인 건 살면서 처음인 듯싶다. 설령 꾸며진 것이라 할지라도, 미혹되는 작품을 보는 것처럼 무대 위 아티스트의 멋진 퍼포먼스도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애써 가다듬지만 고혹적 몸짓과 힘 있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제대로 앗겼으니 하릴없다. 어쩌면 상실한 내 젊음을 소환하고픈 욕망에서 말미암은 낯선 설렘일지도 모르겠다. 외관은 볼품없이 낡아가는데도 숨겨진 감정의 모서리엔 아직도 젊은 어느 한때의 격정이 남아 있는 듯만 싶어 슬며시 열없다.



젊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환상이다.


젊다는 것만으로 부족함 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막상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엔 알지 못한다. 절실히 깨닫는 시점은 항상 아주 먼 미래의 어느 날이다.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이상과 현실이 격렬히 대결하며 허무하게 소진되고 마는 아프고 거센 시간들. 쉽게 지워버려서는 안 되는, 지워질 수도 없는 시간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로 그립고 아쉽지만 다시 또 현실로 받아들일 자신은 없는 것이다.

모든 부재에는 아쉬움과 슬픔이 깔린다. 젊음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남긴 상처와 아픔마저 더러는 그리움으로 변주된다는 걸 알게 된다.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이 어느 순간 내 곁에 없을 때의 그 허탈과 비애와 상실감.


그래서 '늙음'은, 솟구치며 겨워하는 '젊음'에게 늙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 마치 내밀한 진실을 알려주는 듯 차분히 다독인다. 힘겹고 버거워도 젊은 그때가 좋은 것이라고. 진정 그러했던가!


모르겠다. 가슴속 열정은 가득했으나 그다지 치열하지 못했던, 내 청춘의 빛도 이상과 현실의 깊은 괴리와 잦은 어긋남에 막혀 사멸되어 갔다.


꿈꾸던 판타지도 결국 냉혹한 현실의 빈터로 흩어져 사라졌다. 간혹 기억의 베일에 갇힌, 오래전 내 젊음의 실루엣을 꺼내 상실의 구멍을 메워보려 하지만 허황할 따름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젊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환상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 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에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 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해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이상적인 책들, 그리고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 든 사람들과의 대화, 이 두 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 박는 못이 된다.

- 201쪽 _인간의 굴레에서 1, 서머싯 몸


점점 더 낡고 이울어지는 나 또한 가까이의 '젊음'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젊음의 빛이 휘황할 동안만이라도 멍들고 상처 받지 않기를 희망할 뿐.


마냥 눈부시게 아름다운 너의 자태가 부러울 따름이라고, 그것만은 진실이기에 맘껏 외칠 수 있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청년은 그날 이후 내 판타지 속 별이 되었다.






비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젊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젊음이 행복하다는 환상은 갖고 있지 않다.


여름의 별이 영원히 아름답게 반짝거리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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