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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Oct 24. 2015

<강북의 어느까페에서 본 풍경 >

10/15일자 원고 마감일에 본 것들.


마감 하루 전, 강북의 한 카페. 글이 안써진다. 한글2010 첫줄에 있는 커서만 껌뻑껌뻑. 평소 내 심장박동보다 0.5초 정도 빠른 속도.다시 손끝에 힘을 줘본다. 렙탑 자판에 손을 대고 타닥타닥 장단맞춰 타자를 치지만, 썼다 지웠다의 반복. 지우개가 필요없어 좋다만 '백스페이스(backspace)'로 뽑은 활자를 지울 때 곧게 세운 허리가 축 처진다. 그래. 이놈의 어깨가 마감만 되면 뭉치는 건 자세 탓이라기 보단 글을 못써서다. 이런 문장을 잡지에 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연신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자신이 한심해서 허리 힘이 빠지는 것이고 허리가 뒤로빠지니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이고 어깨가 모이니 목이 아래로 처지는 것이고 목이 처지니 목뼈가 머리의 무게를 홀로 지탱할 수 없어 목 주변 근육이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어깨 근육이 뭉치는 것이다. 그러면 여지없이 뒷골이 땡기고 문장에 가야할 신경이 뒷목으로 센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문장력이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이유를 찾아 제거하려 주변을 훑었다. 뭐가 문제일까. 옆 테이블에 'What'up'이라 새겨진 커플티를 입은 한쌍이 키스를 하는 것이 신경쓰여서일까. 큼지막한 모자로 머리를 가린다고 모르니, 이 열기왕성한 친구들 같으니. 

그 옆 테이블의 커플은 서로의 눈을 그윽히 응시하다 싸인이 맞았는지 벌떡 일어서서 흡연실로 입장한다. 그렇다고 내가, '담배 끊어요. 몸에 해로워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백해무익하다는 담배이지만, 애연가들은 밥이 육의 양식이라면 담배는 영혼의 양식이라 주장할 것이다. 몸보다 정신의 건강을 우위에 두는 사람이 자신이라며 담배가 몸을 해치는 것을 알고도 담배를 계속 손에 드는 사람이 그들일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자신에겐 이 무의미한 인생에서 몇 안되게, 마음을 환기하고 의미를 쇄신할 수 있는 것이 한숨과도 같은 담배 한 모금이라며 내 면상에 연기를 뿌릴 것 같았다. 


정면쪽 남여. 커플은 아닌 듯. 음식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여성분의 사연인즉, 진라면 매운맛을 사서 청량고추 3개를 송송 썰어 넣었는데 왠일인지 전혀, 하나도 맵지 않았다는 요상한 이야기. '고추향이 좀 나내 뭐.' '그냥 톡 쏘내' 정도의 미각을 느꼈다는 어제밤 그녀의 경험. 그러며 덧붙이는 질문, "대체 자신의 혀가 문제일까, 진라면이 문제일까." 역시나 옆에 있는 남성은 해결사를 자청한다. 그의 진단은 이랬다.

"당신의 혀는 정상적 감각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혀에 침을 맞으셔야 합니다. 그것도 장침으로"

오랜만이다. 이런 화석같은 드립력을 직접들은 건. 그녀의 반응이 더 기대되는 순간. '그래 맞어. 내 혀가 문제야' 라고 화답하는 여성분은 배알이 없는 걸까. 단지 착한 걸까, 궁금했다.

묘한 상념을 주신 분들이지만 이 분들 때문에 글이 진도가 안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내 바로 옆 테이블이 문제다. 두 명이 대화하고 있다. 자판을 하나하나 꾹꾹 누르듯 조곤조곤 대는 옅은 톤의 목소리. 비비를 바른 듯 환한 톤의 피부. 비스듬이 눌러 쓴 스탭백, 두 번정도 걷어올린 바짓단과 물이 전혀 빠지지 않은 짙은 색 청바지. 내 모니터 모서리를 통해 슬며시 보이는 그들의 실루엣.


광고학부 학생인듯. 광고 분석을 하고 있다. '편강탕'의 저질만화 광고가 대상이다. 만화를 통한 간접적 광고의 효과에 대해, 만화이기에 가능한 높은 접근성에 대해, 만화이기에 불가한 직관적 메시지 전달력에 대해 그들은 논리적이고 지적으로 대화를 한다.  


대화 중 한 여자가 까르르 웃는다. 누가 봐도 같이 웃게 되는 얼굴. 은근히, 또 묘하게 그녀의 존재가 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핑계를 만들어본다.

웃는 여자는 아름답다. 흰 피부로 웃는 여자라면 더 더욱. 

카페에선 김형중의 '그녀가 웃잖아'가 유유히 흘러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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