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숫자는 무엇인가요?
숫자는 추상적이다. 사람은 미간 사이의 주름 약간으로도 화가 난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있는데 숫자는 아무리 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옆 사람이 아프면 신경 쓰이고 내 가슴도 뛰는데 뉴스에서 사고로 304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엔 ‘쯧쯧, 가여워라.’ 하며 혀를 차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새해 떡국 먹을 땐 괜히 싱숭생숭하고, 월급날 통장 잔액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가도 카드 결제일이 휩쓸고 간 통장 숫자를 보면 ‘휴~’ 하며 깊은 한숨을 쉰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그득한 숫자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의미를 균형 있게 살피는 것이 이 기획의 출발이다.
이 코너는 하루 24시간의 숫자가 지구 시간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태양의 장난질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되고, 통장 잔액 0의 개수가 당신의 자신감에 미치는 영향이 과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코너다.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 언론 고시생, 51개의 논술 작문> - 승윤
밤 10시. 벌써 세 시간째다. 한글 프로그램의 커서만 야속하게 깜빡이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글을 완성하기로 한 시간은 9시. 하지만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생각만 오락가락. 이 맥락에서 서서 보면 이쪽이 합리적이고 저 맥락에서 보면 그 말도 일리 있었다. 이것은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문장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 내가 기자질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고 주장을 해야 할까.’란 상념이 얽히다가 졸음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침대에 쓰러졌다.
아침이 좋다. 아침의 향기가 좋고 그 기운이 좋다. 스터디 과제는 못했지만 한 시간 먼저 도착할 수 있게 일찍 집을 나선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 출구, 출근을 위해 나완 반대편으로 걷는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보낸다. 조간신문엔 확신을 품은 오늘의 톱뉴스가 1면을 메우고 있다. ‘그래,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나의 주장 또한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지.’, ‘내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해도 세상은 나에게 바로 반박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나란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세상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이 아침이다. 글을 쓸 용기를 얻고 학교 도서관에 앉아 문장을 채운다.
고뇌한 저녁과 생기 얻는 아침을 보내며 글을 쓴 것이 어느덧 50편. 한 주에 두 편씩 5개월을 견디며 쌓은 것이다. 언론사 입사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2차 시험인 ‘논술(혹은 작문)’ 때문이다. 글쓰기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예측 불가능한 또 하나의 영역 아니던가. 그러므로 나는 또 쓴다. 안 써져도 몇 시간이고 엉덩이 붙이고 쓴다. 글 전체 얼개를 잡고 주장할 핵심 문장을 정해 그에 맞는 근거 자료를 찾는다. 그 근거는 내게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논술은 정보 싸움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찾아 읽는다. 뼈만 취하고 불필요한 껍데기를 버린다. 그렇게 전문가의 관점을 내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입력한 정보를 정제해 나의 문장으로 출력하는 것이다. 내 안에 실을 뽑듯 문장을 뽑고 그 다음 문장과의 논리적 틈을 촘촘히 한다. 문단 간의 연결도 부드럽게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도 ‘읽히지 않는 글’을 쓴다. 몇 시간 때론 몇 십 시간을 투자해 쓰지만 한순간 무의미한 언어가 되어 잊힐 수 있는 글을 꾸역꾸역 적는다. 그렇게 다다른 마지막 문단, 끝 문장에서 날을 세우려는데 무딘 칼만 나왔다. 충혈된 눈으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한 단어가 떠올랐다. ‘헌법 1조 1항’ 잠시 망설이다 헌법을 근거로 회심의 문장을 날렸다. 총 51편,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글쓴이에게만 읽히는 글이 또 한 편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