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숫자#5] 88만 원 세대의 숫자들

우리 시대의 처절한 숫자들에 대하여

by 김권

88만 원 세대의 숫자들


88만 원, 이케아, 삼포 세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취업률은 가장 낮은 세대. 대다수가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타이핑 실력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청춘들.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다는데, 왜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할 직장 하나 얻기가 이리도 힘든 걸까?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규섭의 이야기 : 취준생 투잡 인생에 볕 들 날 오나? >


“띠리링~”

문자메시지를 보니 속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자 빠져나간 메시지였다. 1588로 시작하는 번호로 수신된 문자메시지엔 “고객님 계좌에서 학자금 대출 이자로 10만 5000원이 자동이체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야속했다. 처음엔 그걸 알려준 스마트폰이, 그다음엔 그 문자메시지가. 생각해보니 그 문자메시지를 보낸 고객관리팀 직원이 미웠고, 급기야 한 치의 오차 없이 돈을 빼가는 국민은행 그리고 마지막엔 금리를 조절하는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내뱉은 한마디. “아이씨, 그거 진짜 다 내 돈인데….”

10만 5000원, 적은 돈이 아니다. 5000원짜리 주택복권을 21장 살 수 있고, 한 곡당 500원인 동전 노래방에서 210곡을 부르거나, 2000원짜리 야채김밥 52줄을 사 먹고도 1000원이 남아 편의점에서 자일리톨 껌을 사서 질겅질겅 씹으며 귀가할 수 있는 돈. 그런 피 같은 돈을 은행에 고스란히 바쳐야 하다니. ‘단지 돈 몇 푼 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그 돈을 빼앗나.’ ‘차라리 이자 낼 그 돈으로 토익 시험을 몇 번 더 봤으면 900점은 진작 넘겼을 텐데….’ 괜스레 넋두리를 해보지만 실효성 없는 말일 뿐이다.

지금까지 약 700만 원을 은행에 고스란히 넘겼다. 지난 5년 동안 매달 10만 5000원을 이자로 낸 것이다. 이자를 낸 대출금은 국민은행에서 금리 6%로 빌린 1900만 원. 처음 대출할 땐 과외를 하며 알바를 하나 정도 겸하면 졸업 즈음인 5년 후엔 어느 정도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졸업을 앞둔 지금, 원금은커녕 이자도 겨우 내고 있는 처지다.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이자와 생활비를 겨우 충당하던 나.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는 평범한 취준생이 되려는 내게 다시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번엔 신문 보급소 소장이었다.

경제신문 사이사이에 광고 전단지를 주섬주섬 넣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규섭 씨, 잠깐 얘기 좀 하지.”

“네네, 알겠습니다. 더 빨리할게요, 소장님.”

“아니, 담배 한 대 피우자고.”


신문 보급소의 업무 시간은 이르다. 새벽 3시면 신문 주변은 여러 손으로 빼곡하다. 출근하면 본지에 별지와 광고 전단지를 삽지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른바 ‘지라시 작업’, 이 작업의 속도로 이른바 ‘짬밥’이라고 하는 배달 경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신문 50~80부가량을 가지런히 정렬한 뒤 왼손으로 본지의 가운데 면을 살짝 들고 오른손으로는 광고 전단지를 검지 끝에 붙이듯 옮겨와 가볍게 본지 사이에 밀어 넣으면 끝. 하지만 이 기본 관문이 나에게 더없이 곤혹스럽게 다가온 건 어릴 때부터 앓은 수전증 탓이었을 터. 수전증 때문에 손을 섬세하고 빠르게 놀리는 게 어려웠고, 6개월이 지나도 도무지 숙달되지 않는 나를 보다 못한 소장이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곤혹스러움을 꾹 누르고 다소 냉담한 어투로 말했다.

“저기 규섭 씨, 혹시 다른 일 알아보는 게 어때?”

신문은 40부씩 나눠 돌리는 게 좋다. 왼쪽 겨드랑이에 끼우면 거의 40부 정도가 꽉 끼게 되는데 그렇게 안정적으로 끼운 뒤 오른손으로 한 부씩 꺼내 뛰어다니며 신문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40부씩 다섯 군데 정도 돌면 하루 200부 정도를 소화할 수 있었다. 보통은 문 아래로 밀어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몇 차례 부탁해온 터라 우편함에 신문을 짓이겨 넣었다. 그날따라 담당 구역인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신문을 돌리는 나 자신이 어찌나 비참하던지. 신문 배달 알바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못 가서 한이던 서울대에 ‘신문이나 실컷 넣어주겠다’며 호기롭게 캠퍼스에 신문을 뿌리던 내가, 그 날은 미친 사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캠퍼스를 빙빙 돌았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휴, 매달 40만 원을 또 어떻게 벌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은행에 한 번 더 손을 벌리는 것, 그리고 편의점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별 고민 없이 후자를 택했다. 은행에 이자를 더 얹어주는 게 너무 싫었고, 또 편의점 사장이 그리 깐깐하지 않아 일에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품이 들어오는 날이나 교대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한가한 편이기에 틈틈이 책도 볼 수 있는,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다. 그뿐이랴,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은 마음대로 가져갈 수도 있으니 이거야말로 ‘굿잡(좋은 직업)’ 아닌가.


그 후 매주 두 번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했다. 한산한 새벽 1시, 업무를 인수받고 남은 지폐를 세고 초록색 조끼를 입고 멍한 표정으로 바코드를 찍는다. 손님이 뜸해지는 2시가 되면 토익 필수 영단어 책을 편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또 지겨워지면 육포 하나 뜯어서 질겅질겅 씹어 먹고 마침내 시침이 3시를 가리키면 취침 모드에 들어간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3시가 넘으면 나는 계산대에 팔꿈치를 올리고 양손으로 턱을 괸 채 꾸벅꾸벅 존다, 아니 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졸고 있던 새벽 4시, 아직 잠든 도시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에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키가 큰 남자가 벨을 울리며 가게로 들어왔다. 엉겁결에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친 순간, 내 손에 들린 스캐너가 잽싸게 컵라면의 바코드를 읽어낸다. 그가 이 새벽에 ‘저렇게 많은 물건 중 설마 내게 필요한 게 한 가지도 없을까’ 의심하며 편의점에 들른 건 아닐 것이다. 왜 왔을까, 그냥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이 근처 사세요?”

그는 자일리톨 껌값 1000원과 함께 “네”라는 말을 내뱉으며 편의점을 황급히 나갔다.

무슨 연유로 새벽에 집을 나서는지 물으려던 나는 머쓱해졌다.

“문장에 명사나 술어 정도는 있어야지. ‘네’가 뭐야. 네가 뭔데?”

“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니?” 또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말만 되뇐다.

다음 날 오전.

“띠리링~”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울린 문자메시지 도착 알람. 너무나 자연스럽게 담배 진열대 밑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그 문자메시지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저 문자메시지가 얼마 전 지원한 회사의 서류 전형 결과 발표를 알리는 전언이라면…. 갑자기 떠올린 ‘what if’ 가정법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슬며시 고개를 올려 화면에 일부가 공개된 문자메시지를 보았다.

“00회사 신입 사원 공채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원자님의 뛰어난 역량에도….”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젠장, 뛰어난 역량인데 왜 안 되느냐 말이다!’

이제 뭐 익숙한 일이다. 벌써 수십 번째 겪는 일이니까. 시쳇말로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 서류 전형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하고 이력서만 고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토익 점수가 주원인이라 판단하고 얼마 전부터는 토익 점수를 좀 더 올리려 애썼고, 50점 더 올려서 당당하게 ‘지원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하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내용으로 온 문자메시지.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려주면 덜 아플 텐데….

그래, 그래만 준다면 참 좋겠다. “당신은 이 부분을 보완하면 매력적인 구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더 날 선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건승하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 기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 회사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겠지.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게 되겠지.


오늘은 정말 편의점에 콕 박혀서 바코드나 찍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사장한테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렇게 어떤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 즈음, 계속 누워 있다간 취업이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대강 세수를 하고 허겁지겁 가방을 쌌다. 토익 RC 문제집, 필수 단어집, 노트북과 충전기 그리고 소설 한 권과 연습장 한 권….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학교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온 학교 도서관. 방학이지만 도서관은 늘 취준생들로 북적인다. 졸업할 시기가 지났지만 취업 때문에 졸업을 유보한 학생들이 도서관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고. “오죽했으면 얼마 전에 학교 측에서 졸업 유예한 학생을 위한 공부 공간을 따로 마련했대”라는, 이전에 읽은 카톡 글이 생각나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을 향하는 길에 큼지막한 전신 거울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비친 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깨는 축 처져 있고 양팔엔 책이 한 아름. 머리는 덥수룩하고 피부는 꾀죄죄한 그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표정이 절절했다. 그 표정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심리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걸, 필요하다면 남을 밟고 올라설 수도 있다는 마음이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아득해졌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결국 그도 다른 사람에게 심한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은 뒤, 이 사회에서 다시 한 번 도망치게 되고, 이시다 이라의 말을 깨달을 것이다. 통조림 속 봉인된 시간이 풀린 것처럼, 수상할 것도 없이.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한 개인으로서 사는 것이지, 평균적인 노동자로 평균적인 삶을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논리나 통계도 좋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 길로 가려는지, 왜 그 일을 하려는지 확실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지난한 취업 활동에서도, 또 그 직업에서도 ‘의미’를 찾기 힘들지 몰라. 물론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간다면 무조건 남을 밟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



지고 온 삶을 내려놓고 흔들리는 끝으로 간다.

날개를 접으면 불안의 꼭대기에도 앉을 만하다.

어떤 것의 끝에 이르는 것은 결국 혼자다.

김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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