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얽힌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사랑!
왜 우리는 사랑을 맺는다거나 사랑을 이룬다고 하지 않고 사랑에 ‘빠진다’고 할까. 사랑의 깊이 때문일까. 사랑이란 ‘심연’이 우주처럼 깊어 들어가면 헤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일까. 세 사람을 만났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이번엔 그들의 숫자에 얽힌 ‘사랑’이야기다.
<그 여자의 사정 : 5년 연애, 12번의 재결합>
외로웠다. “힘들지?’” 누군가 한마디 툭 던지며 뒷머리를 쓰다듬으면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모진 서울살이에서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사람도, 나의 괴로움을 맘껏 토로할 대상도 없었다. 이제까지 관계의 안전거리를 칼같이 지켰지만 그 날은 모든 상황이 안전거리를 무시하게 하였다. 서울 광화문, 졸업 후 10년 만에 모인 대학 동창회 날 일어난 사고. 학과 동기와 술김에 밤을 보낸 사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 자동차를 탄 것 같았던 그 날의 사고는 성호와 나를 8년 동안 괴롭혔다.
같은 날 동창회에서 만난 그의 친구 성호. 그는 편했다. 처음 단둘이 밥을 먹던 날. 그는 나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눈빛과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일정 부분 이입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연애보단 결혼할 사람이 필요했던 터였기에 그 섬세한 배려에 끌렸다. 그와는 오래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뜨겁진 않았지만 꾸준했다. 언젠가 그와 2박 3일로 남도여행을 간 적이 있다. 방이 하나밖에 없어 같은 방을 쓰게 된 그와 나. 밤이 되자 침대로 슬며시 올라온 그는 내 귀에 입을 대고 “걱정 말라”며 “등이 배겨서 그러니 밑에 깔 이불 하나만 달라”고 말하곤 5분 뒤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믿음직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앞으로 귀마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밤이었다.
별 탈 없이 지냈지만, 마음 한편이 늘 찜찜했다. 그 날의 사고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더군다나 성호와 그는 친한 친구사이였다. 만난 지 2년이 되던 날, 고민 끝에 그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사고를 친 적이 있다고, 그때부터였다. 이별과 만남을 11번이나 반복한 게. 그는 ‘그 사건’에 집착했다.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숨길 수가 있니”란 말이 시작이었다. 언젠가 “또 어떤 다른 폭탄을 숨기고 있는 거야”란 말을 하고 난 뒤에 그의 입에서 “너, 정말 가증스럽다”는 말이 나올까봐 내가 얼마나 심장이 두군거렸는지. 일단 꾹 참았다. 일차적 잘못이 나에게 있었으니, 목구멍까지 나온 변명들을 타액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는 점점 변해갔다. 짜증이 늘고 화가 습관이 되어갔다. 내 생각도 변해갔다. ‘그와 함께 하는 결혼 생활’을 그려보아도 더는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쓴웃음만 삼키던 나. 2009년 영화관 커플석에서 <아바타>를 보던 중, 그의 귓불에 입술을 대고 말했다.
“우린 여기까지 인가 봐.”
그날 이후 우린 지난한 힘 싸움을 했다. ‘밀당’을 벼랑 끝에서 한 것 같다. 욱해서 이별하고 외로워서 다시 만나고 허무해서 헤어지고 다시 그리워서 만났다. 그 힘든 시간을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10번째 이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그때. 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심리상담을 받아보자. 아니 내가 먼저 받아볼게.” 그는 자기가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며, “너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 사건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 불안해, 너무나. 심리상담을 꾸준히 하면 나아질 거라고 친구가 그랬어. 그럼 우리 진짜 행복할 수 있는거야. 마지막으로 좀 더 노력해보자“라고 말했다.
언어는 사랑보다 늦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에 실패하고 이별 뒤에 좀 더 나은 사랑을 행한다. 서로 친밀해진다는 건 서로 구속해 간다는 것. 추궁하고 캐내던 시간을 견디고 상처를 헤집고 곪은 고름을 터트리며 오해와 이해의 간극을 좁혔다. 그렇게 애증 한지 언 5년. 2015년 1월 한집에 살고 있는 그와 나의 ‘사랑연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남자의 사정 : 5년 연애, 12번의 재결합>
누가 망치로 머리를 퉁 때린 것 같았다. 꿈일 거라 믿어도 봤다.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가 다른 사람과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일 아닌가. 왼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틈으로 불어온 바람이 내 이마를 툭 치고 달아났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굳은 결심을 한 듯이 벌떡 일어서서 카페를 나왔다. 내 뒤통수를 간절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의문과 의심이 가득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볼 때 "응. 우리 잘 지내지" 내지는 "알잖아. 준희 예쁜 거" 하며 속은 배배꼬였는데 겉으로 멀쩡한척하는 그런 건 싫었다. 못 미더웠다. 관계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사랑에도 계산이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좋으면 그냥 다가갔다.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라든가, 만져보고 싶은 물건을 향해 주저 없었다. 그냥 입을 벌려 웃으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럴 때, 어떤 거부를 당했더라도 그 상처가 깊지 않았는지, 상처에 관해선 기억조차 없다. 그렇게 준희에게 숨김없이 다가갔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숫자도, 계산도, 비밀도 필요 없다고 굳게 믿었다.
2007년 봄, 그녀와 2박 3일 남도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예약 없이 갔더니 민박집에 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나의 믿음직스러움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곧바로 스쳤다. 그녀가 씻을 땐 밖에서 기다렸다. 그녀가 옷을 다 갈아입고 TV를 보고 있을 때 나는 세수만 했다. 침대가 하나여서 나는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다. 침대에 올라가는 척했지만 놀라지 않는 그녀 모습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이불만 빌려 조용히 잠을 잤다. 그날 밤은 군대에서 코골이를 참았던 것처럼 긴장하며 잤으니 코를 골지 않았으리라. 그렇게까지 애써 지켜주고 싶었던 그녀가 다른 사람과 먼저 첫날밤을 보냈다니, 다시 화가 났다. 그런데 생각을 더해 보니 그녀를 탓할게 아니었다.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 그놈 탓이다. 음흉한 눈빛을 가졌을 것이 분명한 그날 밤의 그 남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과거를 곱씹으니 행복한 추억이 더 많았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난 여전히 그녀 없이는 안 돼’ 그것은 그녀에 대한 수많은 의심을 상쇄시켜줄 작지만 큰 ‘확신’이었다. 그녀에게 전화했다. 술 한잔 하고 싶다 했다. 우리는 만났고, 다시 술을 마셨다. 이별은 참 어려운 거라고 말했다. ‘쿨’해지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나의 마음을 설명했다. ‘큰일도 아니지. 한밤중의 사고일 뿐인데. 중요한 것은 지금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거’라고 말하며 주술을 걸 듯 세뇌했다. 혼자 횡설수설하다 옆을 보았다. 그녀의 뺨엔 눈물을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가 팔목을 접었다. 위로가 아니라 눈물이 필요할 테니까.
심리상담을 받던 중 나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를 구속하려 했는가?” “나는 ‘그 사건’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성숙했는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모든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변덕스러운 나를 견딜 수 없을 때 옆엔 여전히 그녀가 있었다. 내가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을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애인이었다.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야겠다는 다짐. 결혼이란 걸 한다면 꼭 준희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1년 뒤 우리는 12번째 재결합을 했다. 영원한 재결합의 서약, 결혼이었다.